[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급식대신 학식
3월 첫 주, 프로젝트 회의를 끝내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교수님과 전공방 선생님들과 회의도 끝난 겸 함께 점심을 먹으러 학식에 갔다. 이제 막 교수님과 얼굴을 트는 시기여서 무슨 대화를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참에 교수님이 먼저,
"박세진 선생님은 대학원에 오니까 어때요?"
라고 물으셨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답을 고르다 학교에서 보내던 점심시간이 생각났다.
"원래 점심시간이 점심시간 같지 않네요. 애들이랑 밥 먹으면서 보냈는데, 이제 애들이랑 안 먹으니 어색하네요."
그렇다. 이제 점심시간이 오롯이 혼자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는 한 입만 먹어 보자고 온갖 좋은 이유를 들어 회유하지 않아도 되고, 밥 한 톨까지 다 먹어보라고 용기를 주지 않아도 되고, 다 먹은 학생들을 검사하지 않아도 되고, 급식 시간을 시끄럽게 보내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느라 내 식판에 소홀해질 일이 없다. 드디어 생존을 위한 식사가 아니라 인간답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성인들 틈에 껴서 보다 우아하게 밥을 먹을 수 있고 남이 먹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야호. 점심시간만으로도 나는 학생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학교에는 여러 학생 식당의 메뉴를 모아서 알려주는 앱이 있을 정도로 여러 군데가 있었다. 거의 단과대별로 학생 식당이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사범대 학생 식당은 메뉴명만 보면 맛있어 보여서 가면 막상 탄수화물 중심으로 겉만 번지르르해서 나중에는 제일 가까운 식당이지만 거의 가지 않았다. 직영으로 하는 식당 중에서 학교 중앙 연못 근처에 있는 식당과 학생회관 식당이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특히 반계탕이 나오거나 닭 양념구이가 나오는 날은 닭 반마리를 주기에 인기가 많아 줄이 길어지기 전에 가야 했다. 가끔 예술대에 있는 학식도 가곤 했는데 예술대답게(?) 다른 식당보다 약간 더 비쌌지만 그만큼 메뉴도 가짓수가 더 많았다. 사회대 쪽에는 이슬람인을 위한 할랄푸드,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 뷔페가 준비되는 식당도 있었다. 채식 뷔페를 이용해 보지 못했지만, 같이 먹은 친구 말로는 먹을 것이 많다고 하였고, 할랄푸드에서는 쌀국수와 같은 동남아 음식이 자주 나왔고 식기도 일반 식기와 따로 관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범대는 기숙사가 바로 옆에 있어서 기숙사 식당도 종종 이용하곤 했는데 자주 가니 곧 질렸다. 밥값은 싼 것은 3천 원부터 6천 원까지 다양했는데 무엇을 먹던 밥 값에 비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학교에서 잘 나오던 급식 메뉴가 그리워지곤 했다. 우리 영양 선생님의 안부가 그리워지는 점심시간이었다.
교내에는 커피점도 많았는데 식당 근처에 붙어있어서 가끔은 점심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많아 커피점도 역시 골라서 다닐 수 있었다. 커피점에서는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꼭 앱으로 학생증을 보여주거나 카드를 챙겨서 가곤 했다. 학식과 다르게 커피는 밖에서 마시는 것만큼 맛도 좋았고 밖에 있는 곳보다 더 맛있기도 했다. 일할 때는 마치 회사원의 로망처럼 오후에 바깥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마시고 싶었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또 그렇게 당기진 않았던 게 신기했다. 역시 사람은 못 하거나 억압할수록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던 것은 이런 점심시간이 오래 가리라는 것이었다. 학기가 진행될수록 수업에, 과제에, 회의에, 프로젝트에, 점심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하거나 대충 때우는 날이 생겼다. 내 삶에서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즐기는 건 사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