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봄에 몸살이 났다.
(* 이 글은 이미 지난 대학원 시기를 회고하며 쓰는 글입니다)
모든 연구실이 그런지 몰라도 우리는 매 학기 시작에 학기를 맞이하며 개강 모임을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교 때 교수님과 함께 하는 개강 모임을 가진 적이 없어 이렇게 다 같이 날짜와 장소를 미리 잡고 모이는 개강 모임은 내게는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런 모습의 개강 모임이 맞을 것이다. 대학원이라고 해서 대학교 때의 개강 모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연구실의 개강 모임은 고깃집에 모여 옹기종기 친분이 있는 학우들과 고기를 먹다가 술도 먹기도 하였다가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즉, 배가 차기 시작하면) 사회자의 리드에 따라 교수님부터 개강을 맞이하는 소감, 조언을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어지는 모임이었다. 그때, 나보다 1년을 먼저 지낸 학우가 개강을 맞이하며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지금이 제일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입니다. 지금 많이 놀아두세요."
'뭐? 지금이 제일 한가로울 때라고? 이제 수업도 시작했는데 무슨 말이지.'
이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말은 대학원 생활을 끝낸 뒤 한 학기의 리듬을 돌이켜 보았을 때 확실한 사실이자 진리로 밝혀졌다. 학기 중 과제가 제일 적고 프로젝트도 별로 진행되지 않아 학우들 간 수다를 떨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기는 학기를 시작하는 3월이었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입학해서 적응하기 시작한 나에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는 첫 달, 3월은 결코 호락호락한 시기가 아니었다.
먼저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라는 점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생활면에서 집에서 나와 혼자 사는 것도 처음이고 기숙사에서 누군가와 한방을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기숙사가 그렇게 쓰러져가는 건물도 아니고 깔끔하고 시설도 좋았으나 내 몸은 내 방만치, 편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다. 학교의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무의식중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와 함께 입학했지만 이름과 얼굴 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학우들, 아직 말도 몇 번 섞어보지 않았지만 왜인지 다가가기 어려운 교수님, 아직 잘은 모르지만 친해지고 싶은 연구실 사람들, 그리고 그 외의 우리 전공에 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학우지만 어디서 본 것 같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은 사람들까지.
사실 그들은 나를 1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나답게 다니면 괜찮아!'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 그러했을 뿐 마음은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와 같은 시답잖은 고민은 1초의 찰나 동안 스르륵 스쳐 지나가기도 하였다. 또한 뒤돌아서는 아직 잘 모르는 사이에 너무 오지랖을 떤 건 아닌지 나의 말과 행동을 후회하기도 한 적도 있었다.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도 충만했지만 잘 지내보려고 하는 나의 욕심과 의욕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이라는 독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면 되는 거였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되었고 괜한 눈치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 결과, 대학원생이 된 지 10일 만에 입안에 구내염이 다섯 군데나 생기고 15일 째 되는 날에는 평소에 나지도 않던 등에 여드름이 났으며 20일째는 혈이 섞인 냉을 발견하였다. 이때 진짜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또한 생전 나지도 않던 코피가 3월에만 3번 났다. 교직 생활 5년 동안 이렇게 한꺼번에 아파본 적이 있었던가. 개학만 하면 구내염이 종종 나긴 했었지만 이렇게 다섯 군데가 한꺼번에 헌 적이 있었나. 사랑니 잇몸까지 구내염이 나서 약을 바르기도 난처하였고 입안에서 구내염이 없는 곳을 꼽는 게 더 쉬울 지경이었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칭했다면 나는 첫 학기, 첫 달을 보내는 대학원생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명명하고 싶다. 무의식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스트레스에 따라 자연스레 몸의 건강이 나빠지는 흐름이라고 말이다. 그저 더 배우려고 대학원에 갔을 뿐인데 적응 통을 심하게 앓았다. 누군가 나에게 어느 시기가 힘들었냐고 물어보면 여러 시기가 힘들지만 '입학하는 첫 달'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교사가 아닌 학생의 입장이 되어 학교를 겪어보니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기대, 설렘, 긴장하며 학교에 올지 상상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처음 학교를 상상하며 매우 설레고 기대되지마는 유치원과 다른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겠지?' 어른이 된 나도 새로운 환경에 가면 당황하고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아이들에게는 더욱 학교가 큰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단단한 존재이다. 이 시기를 이겨내고 곧 환경에 적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보다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것도 1학년 아이들이다. 학위 과정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면 학교라는 공간은 언제나 학생들을 환영하고 있는, 언제든지 안겨도 좋은 따뜻한 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 힘겨웠던 3월의 기억을 잊지 않으며 봄이 오는 춘삼월의 따스함으로 아이들을 맞아주고 싶다.
'처음은 누구나 힘들 수 있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으며 그래도 괜찮다.'고 '다 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우리는 생각보다 강한 존재기에 아직은 낯설지만, 곧 세상 어디보다 편한 곳이 될 것이라고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