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아- 20) 기다리지 않아서 기다릴 수 있었다
낭상
0
1306
1
2019.09.02 08:58
정말 기다리고 싶다면 기다림을 묻어두라 했다.
기다림을 인식할수록 기다리기 어렵다.
그건 아이에게도 똑같다.
분노의 시간
아침시간은 전쟁이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애까지 난리니.
어린이집, 유치원 보내는 부모는 아마 비슷하지 싶다.
아내는 아이를 깨우고 씻으러 간다.
하지만 씻고 돌아오면 아이는 다시 자고 있다.
그땐 이미 늦었고, 아내는 닦달하고 아이는 짜증 낸다.
여차하면 버스도 못 태우겠다.
내가 입히고 씻기면 악순환의 시작이다.
아이는 스스로 하지 않을수록 잠도 더 자고 편하게 입는다.
하지 않는 아이를 지켜보는 건 못할 짓이다.
1분 1초가 인내의 시험이 될 테니.
분노를 참는 게 기다림이라면 그리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시간
아내는 나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난다.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하려면 그래야 한단다.
아내는 스스로 30분을 확보할 능력을 갖고 있다.
4살 된 아이한테 그런 걸 기대하긴 무리다.
내가 '옷 입는데, 밥 먹는데 몇 분이다'를 알까?
아이의 시간을 알 수 있고, 알아야 하는 건 어른의 몫이다.
그러면 아이에겐 몇 분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3분 만에 입히지만 아이는 10분이 걸릴 수 있다.
또, 10분은 능력의 문제지만, 태도의 문제라면 30분을 줘도 힘들다.
오늘 신발 신는데 2분이 걸렸다.
내일은 2분 먼저 신발을 신고 있으라 시킨다.
너에게 시간을 주는 건, 네 삶의 책임을 너에게 주기 위함이다.
분리된 시간
얼마 전 첫째에게 알람을 알려줬다.
"빨간 걸 누르면 바로 꺼져.
너무 못 일어나겠어서, 더 자고 싶으면 까만 걸 눌러."
"그런데 조건이 있어.
처음 울렸을 때 바로 일어나면 네가 하고 싶은 놀이도 할 수 있어.
두 번째 울렸을 때 일어나면 그래도 시리얼 먹을 시간은 있어.
세 번째 벨이 울렸을 때 일어나면 옷만 입고 가야 할 거야."
난 아이를 볼 때마다 "옷 입어!"소리 지르기 싫다.
나도 해야 할 것이 있고, 네 준비는 너의 몫이다.
내 시간과 너의 시간이 각자 돌아가도록.
애들 옷도 안 입히고 폰만 들여다보는 남편은 대부분 혼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난 폰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중이다.
게임을 한 판 하고 났더니 아이가 가방을 메고 기다리고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