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아- 16) 가르침의 양면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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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09:31
아이는 세상의 양면을 판단할 수 있도록.
아이를 잘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좋은 부모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 양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양쪽
딸 둘을 먼저 씻기면 물놀이가 시작된다.
놀 때는 별문제 없이 잘 논다.
장난감이 적당히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할 때 가끔 분쟁이 생긴다.
"내가 치울 거야!!"
둘째가 고집을 세운다.
평소에는 잘 치우지도 않던 놈이.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점점 생기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되었다.
동생에게도 기회를 주라고 언니에게 양보를 가르칠까.
언니가 먼저 잡았으니까 기다리라고, 차례를 가르칠까.
누구를 가르쳐야 할까,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할까.
선택
먼저 사람을 선택하는 교육은 안 된다.
언니니까, 동생이니까 이런 말들은 교육의 의미를 흐린다.
양보가 언니만 배워야 하는 가치가 아니며, 동생에게 '넌 아래'라는 위계를 가르치고 싶지도 않다.
사람 자체에 가치 판단이 들어가선 안 된다.
가치를 기준으로 본 후에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람을 보느냐이다.
식당에 가서도 고민이 된다.
그냥 이해하고 참고 넘어갈까.
이런 게 불편하다고 당당하게 말할까.
난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중요한 것이다.
내가 말을 할지 말지도 나의 성향, 가치관에 따른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곧 내가 선택한 가치일테니.
양면
내가 가르쳐야 했던 것이 양보였을까, 차례였을까.
무엇을 가르치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어떤 가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보는 좋고 고집은 나쁜 것인가.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나쁜가.
자기 것을 쉽게 내어 주는 것이 양보인가.
폭력은 대부분 나쁜 것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폭력이 세상에 널렸다.
그것에 저항하려는 힘도 자신의 폭력성이다.
내가 선택한 가치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세상에서 아이가 살게 되는 건 아니다.
싸움을 자른 반쪽의 평화만을 너에게 줄 순 없다.
옳은 것을 가르쳐라.
단, 그 이면을 잊지는 말라.
아이는 세상의 양면을 판단할 수 있도록.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