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_(4)'평범한 교사'가 된다는 것
‘평범한 교사’가 된다는 것
선생님들은 튀는 걸 싫어해요.
신규 때의 기억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뻤고, 열정이 한도치를 초과해서, 맡은 업무도 없는 주제에 아홉 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수업 준비를 하고 환경 정리를 하던 시절이죠. 교생실습을 하던 때 1학년 학급에 전시되어 있던 전신 그림이 기억에 남았고, 저는 6학년 덩치 큰 아이들과 전지를 이어붙여 그 활동을 감행했어요.
아이들과 저는 즐거웠습니다. 전지 위에 드러누운 아이들은 간지럽다며 킬킬거렸고, 서로의 얼굴에 파스넷을 묻혀가며 세 시간이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교실은 내내 소란스러웠죠.
그날도 저는 늦게까지 남아 하얀 전지 위에 알록달록 그려진 여섯 개의 윤곽을 오렸습니다. 그리고 우중충한 회색 벽면에 양면테이프로 멋지게 전신 그림을 붙였어요. 다음 날, 학년 부장님이 교실에 찾아오셔서는 그림을 보고 혀를 차시더라구요.
“저거 1학년 교육과정이야. 6학년이 저런 걸 왜 해.”
또 다른 선생님은 교실 바닥부터 천장을 가득 메운 그림을 보고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얘기하셨어요.
“저게 교육적 목적이 있어?”
학년이 끝나고 그 전지 그림을 떼어내면서, 저는 교실에 양면테이프를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음에 교실을 받을 선생님에게 무척 죄송한 일이라는 걸요.
봄에 딸기가 참 맛있어 아이들을 주려고 몇 팩씩 사가서 나누어주면, 오후에는 소문을 들은 선생님들이 열정이 넘친다고 다들 한 마디씩 던지셨고, 그래서 다음 날 회의에 딸기를 잔뜩 사 가면, 딸기를 손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저 멀리 교과실에서 소식을 들은 다른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셨죠.
“자기가 딸기를 무진장 많이 사 와서 전부 남았다며?”
그해 저는 참 많이 서러웠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고, 잘하려고 하던 일이 실수가 된다 싶으면 바로 비난이 날아왔으니까요.
이해하기 어려워 이불 속에서 울던 때도 있었습니다.
왜 선생님들은 나를 미워할까?
나름의 위로를 건네던 선생님들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제 편이 아니었고, 저는 나중에 이런 떠도는 말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선생님 반은 맨날 시끄럽잖아.”
“혼자 저렇게 애들을 풀어주면 어떡해. 다른 반 애들도 다 물들게.”
“생일파티다 뭐다. 공부는 안 가르치고 놀자판이지 뭐.”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조회를 할 때, 저희 반만 줄을 삐뚤빼뚤 서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다른 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였습니다. 내가 정말 학급경영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러니까 반이 저 모양이지. 이런 말을 수군거릴 것 같았거든요.
아이들과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동료교사와의 관계는 잘 맺지 못했던 첫해를 보내고, 저는 한없이 너그러운(?) 부장님 품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부장님의 비호 아래 저는 하고 싶던 것들을 맘껏 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은 꼭 하는 교실 놀이, 교실에서 찾은 희망 UCC챌린지, 학급 문집 작업, 달마다 교실에서 열리는 이색 대회, 올림픽공원에서 진행한 놀이마당에 주최 학급으로 참여...
부장님은 늘 저를 응원해주셨고, 더욱 신이 난 저는 온갖 공모전과 프로그램에 반 아이들과 함께 참여해서 다른 반 아이들의 원성 아닌 원성을 샀습니다.
“저도 선생님 반 하고 싶어요.”
“저희 반 선생님은 재밌는 거 안 해요.”
제게 응석 부리듯이 매달려 그렇게 말하는 다른 반 아이들을 달래면서, 저는 어리석게도 거만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해를 다 보내고 헤어지면서, 넉넉한 인품의 부장님께서는 제게 농담삼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구, 지예샘 때문에 내가 우리 반 애들한테 얼마나 미움을 샀는데.”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서도, 저는 그 말씀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을 혼내는 스킬(?)이 늘고 교사로서(!) 다듬어지면서, 저는 더 이상 욕을 먹지 않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신규 때의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자, 아이들과 함께 뛰며 노는 일이 힘들고 귀찮아졌습니다. 꼭 귀찮아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차분한 교실 분위기가 아이들 학습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석이조인 셈이죠.) 반 아이들은 앉아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했고 저는 점차 차분한 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들뜨고 신나는 수업보다 깊이 생각하고 기본에 충실한 수업을 많이 하게 되었고, 재미있는 효과가 많이 들어있는 PPT로 수업하는 것보다 잘 구조화한 판서가 아이들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배 선생님들이 닦아놓으신 길을 차근히 밟아가던 중에, 신규 선생님이 옆반으로 발령 받았습니다.선생님은 에너지가 넘쳤고, 교실은 늘 시끄러웠으며, 매주 열리는 요리파티로 맛있는 냄새가 복도에 흘러넘쳤죠.
내 신규 시절 생각나는군.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며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조용한 수업 시간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발구르기와 벽치기 공격을 받고 우리도 매주 요리파티를 하자는 반 아이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옆 반 배려를 안 해?’
몸으로 놀아주는 옆반 선생님에게 저의 인기마저 빼앗기는 느낌이 들자, 저는 질투에 휩싸였습니다. 마침내 분노에 차 옆반의 문을 두드리기 직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실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월권 아닌가? 나 꼰대 다 됐네.’
순간 잊고 지냈던 너그러운 부장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음... 얼마나 힘드셨을까... 배려없이 천방지축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나한테 뭐라고 하지도 못하시고... 그 반 아이들 원성도 자자했는데... 내가 너무 철이 없었네...
사람은 겪은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요. 저는 갑자기 부장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쭙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첫해에 저를 그토록 미워했던 선생님들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 어려워지고, 정말로 몸도 무거워져서, 내가 할머니 선생님이 되었을 때는 지금 열정의 얼만큼이 남아있을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줄까.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8년차인 저도 신규선생님들이 부러울 때가 많은걸요. 혹시 선생님이 열정으로 인해 학교에서 미움을 받는 처지라면, 그 미움의 뿌리가 선생님에 대한 질투일 가능성이 높으니,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학급경영은 담임교사 고유의 권한입니다. 동료교사는 당연하거니와, 심지어 관리자도 마땅한 근거 없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죠. 그러나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다른 학급에 피해를 끼치는 학급경영의 경우 충분한 대화를 통해 다른 학급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쪽으로 수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튀셔도 됩니다!’ 이런 대답을 바랐는데, 혹시 맥이 빠지시나요? 아무쪼록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폭 좁은 조언입니다. 한 건물 안에 한 층 안에 바로 옆 교실을 사용하는 현재의 교실 상황에서, 모두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학급경영의 방향을 학년 내에서 통일할 필요는 없습니다.간혹 학년 전체의 통일성을 기조로 담임교사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교육을 강요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학생 지도 측면에서 꼭 필요하지 않다면 자율성과 다양성을 훼손하는 통일성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쓰다보니 자기 반성처럼 되었네요.
요점은 이겁니다. 선생님의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맘껏 표현하시라는 것, 그러나 그것이 다른 학급에 피해가 되지는 않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다른 학급의 아이들도 우리 학급의 아이들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딱히 다른 학급에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미움이 계속된다면 선생님이 옳은 것이에요! 굳건히 밀고 나가시기를! 오늘도 선생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다음 '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 시리즈는 12월 1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