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_ (2)'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줘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줘
단순히 밥벌이로 생각하면 안 되나요?
네, 저 고백할게요.
솔직히 학교에 출근하면서 밥벌이하러 간다는 생각, 해본 적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교에 출근하고 계신가요?
저도 처음 발령받고는 아이들과 허니문을 보내며 교직을 천직이라고 여겼습니다. 방학 때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사진첩을 들여다봤고, 월요일이 오는 일요일 저녁이 즐거웠으며(이건 지금 생각해도 미친 것 같네요...), 첫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에는 2월 내내 울고 다녔으니까요. 그때 그렇게 유난을 떠는 저를(?) 귀엽게도 우습게도 보셨던 선배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아마 저는 교사의 발달 단계 중 회의기에 왔나 봐요.아이들이 전만큼 예쁘지가 않아요.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 늦게까지 남아 수업을 준비하던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최근 저는 교직 생활을 ‘적당히’ 이어가는 중입니다.적당히 수업 연구하고, 학생이나 학부모를 적당히 상담하고, 주어진 업무도 적당히 하구요. 학교에서 쓰는 에너지를 줄여서 집에 오는 게 목표구요. 당연히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날이지요.
근데 이러다 보니 약간의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범생이로 살아온 기질 때문일까요. 이래도 되는 걸까? 게다가 가장 가까운 짝꿍이 저의 의문에 불을 붙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래도 달라야지. 나는 아무나 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이 말은 기분 좋기도 하면서 또 억울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이 요구된다는 것은 알아요. 저 같아도 제가 학부모라면 교직을 그냥 밥벌이로 생각하는 선생님보다 사명감 있는 선생님이 훨씬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교사도 다른 직장인처럼 교직을 밥벌이로 생각하면 안되나요? 선생님이란 직업이 다른 직업과 꼭 달라야 하나? 그래서 진지하게 성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교직을 밥벌이로 여기면 안 되는 걸까요?
먼저 ‘밥벌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어요.
‘밥벌이’ : 먹고살기 위하여 하는 일.
네, 참 명쾌하네요. 사실 밥벌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 그렇지, 세상 모든 선생님들이 밥벌이로 교직하시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보수 없이는 직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요즘 밥벌이로서 저의 일을 대하고 있는데요. 그럼 제가 해야 하는 ‘밥벌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명문화된 선생님들의 직무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법으로서 주어진 직무만 잘 수행하면,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최선을 다하든 다하지 않든, 최소한 직무유기는 아닌 선까지 일해보려구요.
초ㆍ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④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제38조(목적)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6조의5(학급담당교원) ③ 학급담당교원은 학급을 운영하고 학급에 속한 학생에 대한 교육활동과 그와 관련된 상담 및 생활지도 등을 담당한다.
좀 더 명쾌해졌습니다. 우리가 잘 쓰는 단어로 편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학급경영과 교육과정 운영, 상담과 생활지도를 하면 되는 거군요! 하하... 이거 만능교사인데요.(;;;) 그러니까 학급경영 / 교육과정 운영 / 상담 / 생활지도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밥벌이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요...
제 친구 A는 처음부터 교직에 큰 뜻이 없었습니다. 성적에 맞춰 교대를 선택했고, 상대적으로 워라밸이 좋은 직업에 만족해서 교사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 큰 애정은 없다고 지금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교사의 4대 직무(?)는 잘 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깊은 래포를 형성하지는 않더라도, 교사로서 해야 하는 일들은 책임감으로 하는 것이죠. 그 친구에게 이 질문을 했더니, 우문현답을 하더라구요.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거야말로 존경받는 선생님이지.”
그런데 갑자기 또 하나의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도 엉망이 되는 해, 가끔 있잖아요.물론 교사의 역량이 한 해의 학급 경영을 좌우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의도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런 경우에 교사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데요. 그럼 결과를 가지고 직무수행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의도를 평가할 수는 있을까요? 최선을 다하는 교사는,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교사일까요?사실 저는 가끔 보았습니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하신다는 질책과 꾸중이, 도리어 아이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하는 장면을요. 발령 초기에는 학생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서 깊은 영향을 끼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제 품에 있는 동안 안전하게 지내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교사가 아이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게, 모든 아이에게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빠졌는데요. 생각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가다 보니, 의도나 노력은 너무나 정성적이어서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선에 척도를 매겨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거죠.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교사로서 해야 할 직무를 수행하는 상태를 0으로 보았을 때, 0만큼 하는 선생님, 10만큼 하는 선생님, 100만큼 하는 선생님 모두 할 일을 하시는 훌륭한 선생님들이죠. 실제로 교사가 해야 하는 일 자체만 해내는 것도 어렵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로 직무를 수행하는 교사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겠죠.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으니까요. “나는 교사 그냥 밥벌이 정도로만 해.” 라고 이야기하면서 교실을 방치하거나, 상담이 필요한 아이를 보고도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밥벌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죠.
저는 요즘 직무유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친절’을 노력하고 있습니다.무슨 말이냐면, 진심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제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노력한다는 말이죠. 누군가는 저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가상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해서 상처 주지 않는 것, 때로는 화가 나도 인내하고 품어주는 것.
물론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단순한 ‘밥벌이’로 생각한다는 건 제 개인적인 교직생활 만족도에서 마이너스가 됩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예쁘지 않다는 것은 교사에게 크나큰 형벌이나 다름이 없죠. 저 또한 이 시기가 지나가 다시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생님들 보면 좀 화날 때가 있어요. 참교사를 운운하며 다른 교사를 쉽게 비난하지만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직무를 게을리하는 교사. 사회적으로 대우받기를 바라면서 공적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 대한 뒷담을 하는 교사. 퇴근할 때까지 웹서핑을 하면서 적은 월급에 불만을 표하는 교사.
저는 교사로 발령나기 전 커피숍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쉬운 아르바이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외 교사일 때와 커피숍 직원으로서 사람들에게 받은 대우는 천지차이였어요. 상대적으로 대우를 받는 직군인 게 분명한데, 직무는 유기한 채 권리만 주장하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사실 교사는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많은 존경을 받는 직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회적 이슈가 있고 교사에 대해 공격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이란 큰 스승이며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직군이라는 사회적 합의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싫은 소리를 듣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군에서, 거만해지는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무리는 신현수 선생님의 시로 대신합니다.
밥벌이의 지겹지 않음
신현수
예전엔 아이들과 씨름하고
종일 수업 하는 게 힘들어
딱 며칠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적 많았지만
나이 든 지금은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그래서 밥벌이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고 살 수도 없고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도 없고
스리랑카의 따루시카디브안자리에게
안정된 급식과 학업에 필요한 학용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옷을 사줄 수 없고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친구
상조회에 회비를 낼 수 없고
매일 아침 쿠퍼스를 날라다주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수 없고
내가 속한 여러 단체의 회비를 낼 수 없고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없고
뭐가 보장되는지도 잘 모르지만
보험금을 낼 수 없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없다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실은 밥벌이였다는 걸 깨달으니
이제 대체로 모든 게 견딜만하다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음날 일찍 벌떡벌떡 일어나야 하는 내가
하나도 가엽지 않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 의미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가 하나도 지겹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