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교육전문가이신가요?
내 남편은 워커홀릭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고, 지나치게 꼼꼼해서 대충 넘길 일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당연히 업무에 속도가 날 리 없고, 나는 평일 내내 홀로 저녁을 먹는다.
동료들은 ‘혼자 저녁 먹어서 좋겠다~ 대충 떼우면 되잖아.’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간만에 야심차게 차린 밥상 앞에 혼자 앉아 유튜브를 켜고 숟가락을 드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이런 남편의 정성 어린 업무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수시로 바가지를 긁었다.
자기 아니면 할 사람 없어?
조금 덜 꼼꼼해도 되잖아.
자기의 저녁시간은 하나도 보장받지 않는 이 생활에 만족해?
남편은 실제로 힘들어했다. 내 바가지 때문만은 아니고, 많은 업무량과 그것을 모두 공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자신의 성정 때문에. 실제로 일주일 내내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고 여섯 시에 출근해야 했을 때, 벌게진 눈으로 나를 끌어안고 진심으로 퇴사하고 싶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거봐. 내가 말했지. 그렇게 무리하다간 자기 안의 뭔가가 탁, 하고 풀린다고.
그러면서 나의 설렁설렁 업무스타일을 의기양양해 했다. 요즘은 워라밸의 시대라고.
사회생활 시작이 조금 늦었던 남편은 이제 갓 3년차가 되었다. 입사한 지 꼭 2년이 되던 날, 술을 한 잔 걸치고 와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 오늘 입사한 지 꼭 2년 째다? 지난 주부터 자랑했더니 팀 사람들이 2주년 축하파티 해줬어.
뭘 그런 걸 다? 새삼스럽다고 생각하며 핀잔을 주려 남편을 쳐다봤을 때, 기분 좋게 반짝이는 얼굴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남편은 흡족한 얼굴로 아예 방바닥에 드러누워 본격적으로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말이야. 한 6,7년 차 되면 진짜 전문가 되더라고. 나도 그렇게 될 때까지 해 볼라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거, 진짜 멋지잖아.
6,7년 차?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인가?
나도 햇수로만 따지면 7년 차인데? 근데 난 아직 전문가 아니야.
그래? 왜 그럴까... 그건 자기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띵.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조금의 악의도 없이 순수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소리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냥 단순히 말해서. 자기가 선생님 되고 지금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잖아. 업무시간이야 다 같이 하는 거고. 사실 그 시간에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자기의 잡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시간은 그냥 질적으로 동일하게 모두 열심히 교재 연구하고 업무 했다고 치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려면 남들이 안 할 때, 업무 이외의 시간에, 내가 얼만큼 시간과 정성을 투자했느냐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자기는 업무 이외 시간에 교사로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뭔가를 노력한 건 아니잖아. 그럼 딱 그 정도인거지.
얄밉도록 맞는 말이었다. 섭섭하다는 생각보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편은 급히 그 말을 수습하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자기는 자기의 꿈이 있잖아. 거기에 나머지 에너지를 쏟잖아.
업무가 너무 힘이 들 때, 아무리 솔루션을 바꿔도 제자리인 아이를 만났을 때, 수업이 엉망일 때,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 동료교사와의 관계에서 허덕일 때, 나는 왜 이 연차가 되도록 해결하는 방법도 모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았다. 남편의 말을 듣다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 정도의 노력만 했으므로, 이 정도의 고민만 했으므로, 지금 나는 교육전문가가 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욕심은 한껏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만 하면 아이들이 척, 알아듣는 선생님, 관리자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넘치는 사랑을 받는 선생님, 교실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낼 일이 없는 선생님...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교육전문가가 되겠습니다! 라는 말로 이 글을 끝맺을 생각은 없다. 이렇게 한 차례 얻어맞았음에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관성대로 교직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지만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나는 딱 그만큼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년에 좀 더 낫게, 후년에는 그보다 더 낫게,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이제 당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선생님, 선생님은 교육전문가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