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_(5)원격수업에 대처하는 교사의 자세
원격수업에 대처하는 교사의 자세
- 코로나 시국, 자율성이라는 양날의 칼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2020년,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원격수업’이라는 생소한 수업방법을 맞닥뜨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이들과 얼굴도 한 번 마주보지 못한 상황에서 부랴부랴 학급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알음알음 이게 좋다더라, 소문이 난 컨텐츠를 퍼다 나르는 게, 내가 마주한 ‘원격수업’의 첫모습이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교실에 아이들이 없는 유토피아가 실현되었다’며 기뻐했고, 어떤 선생님들은 ‘쓸쓸한 교정을 보니 눈물이 난다’며 슬퍼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반응이 이렇게 양극단으로 갈린 만큼, 원격수업의 형태도 극단으로 치우쳤다.
-코로나 시국에 대처하는 교사의 자세-
1) A교사
나는 컴퓨터에 매우 강하다. 원격수업은 자신있다. 뚝딱뚝딱 유튜브로 컨텐츠를 만들고,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교사로서 나의 인지도를 더욱 널리 알린다. 실시간 화상수업은 식은 죽 먹기다. 물론, 교실에서 하는 대면수업보다야 질이 떨어지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만든 유튜브 컨텐츠가 꽤 반응이 좋아서 연수 제의가 들어온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이것은 기회다.
2) B교사
요즘같은 천국이 없다. 애들 없으니 살맛 난다.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올려놓은 자료 잘 활용하면, 나는 일할 게 없다. 과제 올려주고, 시간에 맞춰 체크하고,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내 과제 점검을 독려한다.
3) C교사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일단 인디스쿨에 들어가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살핀다. 좋다고 하니 나도 우선 줌 활용 연수를 신청한다. 실시간 수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동학년 선생님들이 눈치를 준다. 그래도 다른 선생님들이 만든 컨텐츠만 사용하는 건 좀 그래서 선생님들끼리 과목을 분담했다. 맡은 수학, 과학 과목 영상을 찍어 e학습터에 올린다.
D교사, E교사... 매우 다양한 성향의 교사들이 자신의 성향만큼이나 다양한 원격수업 스타일을 1학기에 구축했다. (대표적인 성격을 띤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 성향의 교사만 우선 적어보았다.) 이 다양성 때문에 원격교육의 질적 차이를 느낀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교육부는 ‘주 1회 이상의 실시간 쌍방향 교육’ 같은 권고사항을 2학기에 내놓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이라, 이를 지키지 않아도 법적 제재는 없다.
나는 카오스와도 같았던 2020년을 보내면서 너무도 다양한 형태의 원격수업을 보았다. 글쎄, ‘다양한’,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질’로 판단되는 원격수업들. 그래서 교사들에게 주어진 ‘수업의 자율성’의 양면성에 대해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해야만 초등교사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이 주어진다. 교대 통폐합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지만 번번이 교대를 지켜낸 논리는 교사는 ‘교육전문가’이기에 특수목적대학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전문가’에게는 당연히 합당하게도 한 교실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권이 주어진다. 사실 나는 그동안 교사가 갖는 자율, 그 권한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살로 가 닿는 다양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으며, 아이들은 6년 동안 다양한 성향을 가진 담임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특히 학급경영이나 생활지도 측면은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성문화된 법칙이 있을 수 없다. 선생님 각자가 터득한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아이들과 1년 동안의 관계를 맺는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실현하는 과정에서 담임교사의 자율권은 꼭 있어야 하고, 이는 보장받는다.
그런데 이 광범위한 자율성이 원격교육에 적용되다 보니 그 본질이 흐려지고, 이상한 결과만 남았다.어떤 학급은 과제형으로 모든 수업을 한다. 다른 학급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선생님을 만난다. 또 어떤 학급은 비등교일에도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못한 과제를 선생님의 감독 아래 한다. 또 다른 학급은 과제를 해도 안 해도 평화롭다. 원격수업 방법이 이렇게 천차만별이다. (내가 학부모래도 국민청원 올릴 것 같다.)
심지어 학교를 등교하는 날에도 수업모습은 판이하게 갈린다. 이는 코로나 시국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담임선생님의 경각심에 따라 달라지니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반은 철저히 거리두기 교육을 하고(물론 자주 무너지지만) 친구들끼리 접촉하는 게 엄격하게 금지된다. 모둠 활동은 꿈도 꿀 수 없다. 또 다른 반은 마스크를 썼으니 노래도 부르고, 공용준비물을 사용해 모둠 수업을 한다.
이 허용된 다양성이 문제라고 생각한 나는 열심히 짱구를 굴려 보았다. 그러면 교육의 형태 자체를 어느 정도 국가에서 규격화해서 줘야 하는 걸까? 교사 간의 간극이 너무 심하지 않도록? 그런데 사실 이게 국가수준교육과정이잖아. 그걸 우리는 재구성하는 거고. 재구성을 꼭 필요한 거고 거기에서 자율성이 주어지는 건데... 어떻게 생활지도나 학급경영까지 국가에서 규격화할 수 있겠어.(물론 코로나 시국에서 꼭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은 지켜야 한다. 이건 자율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까지 오니까 다시 도돌이표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열심히 돌을 굴려 보았다.
사실 매해 공부 진짜 열심히 해서 교육과정 전문가가 되어야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는 거지. (앗, 찔린다.) 교육과정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대충 어설프게 자율성을 발휘하다 보니 교육에 질적으로 차이가 생기는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원격교육을 꿀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시는 선생님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그 방법을 선택하신 게 맞나요?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니 그게 최선이라고 판단하신 건가요? 선생님은 스스로를 교육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신가요?’
그런데 또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나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가 없다.
매 교시 과제를 주고 이를 점검했다면,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선생님은 원격수업을 한 것이고,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침을 어긴 것도 없다. 교사로서 우리에게 요구된 본분은 어쨌거나 ‘원격’으로 ‘수업’을 하라는 것뿐이니,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그리고 항상 예외는 있기에, 정말 실시간 수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선생님이 있을 수 있고, 실시간 수업이 왕도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정말로 어떤 학급에는 과제를 확인하고 제출하는 형태의 수업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의도와 결과는 항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오랜 생각 끝에 이 판단을 ‘아이’들에게 맡기려고 한다. 아이들은 귀신이고 도사다. 선생님이 진심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지, 정말 수업을 열심히 준비했는지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실제로 교육을 받는 아이들만이 선생님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ㅎ
(업로드를 앞두고 급하게 글 주제를 갈아엎느라 업로드가 늦었네요.. ㅜ 자꾸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 흑..
다음 업로드는 반드시!!! 12월 15일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