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_ (1) 품위 유지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내 SNS는 내 맘대로 해도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이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내 얼굴에 써 있나? 내가 그렇게 선생님스럽게(?) 생겼나? 나 또 직업병 발휘해서 도덕적인 얘기만 했나? 그런데 웃긴 건 저 또한 ‘선생님 얼굴’을 분별하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거에요.
“혹시... 교사이신가요?”
강하게 느껴지는 동족 느낌에 조심스럽게 여쭤보면 십중팔구는 맞습니다. 뭔가 딱 특정지어 설명할 순 없지만 선생님 아우라는 상당히 강력하고 정확하죠. 왜 이렇게 선생님들은 선생님의 아우라를 갖게 됐을까요? 어떤 집단에 오래도록 속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해요. 교직 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에 말이죠. 오죽하면 이런 이미지가 등장했을까요.
<출처, 브레이크뉴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교사인지를 물을 때, 묻는 사람들은 대개 좋은 의미를 담는 것 같아요. ‘모범적으로 보여요’, ‘말하는 게 똑 부러져요’, ‘말투가 상냥하고 부드러워요’, ‘반응과 칭찬을 잘 해요’ 등등. 그런데 이 말이 왜 제게는 이렇게 들릴까요. ‘재미없게 보여요’, ‘샌님처럼 보여요’, ‘고리타분하게 느껴져요’. 적어도 생각이 자유롭고 발상이 참신하며 통통 튀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어보진 않잖아요? 남들에게 보여지는 제 이미지가 보다 ‘새롭기를’ 바라는 저에게는 제 직업을 쉽게 알아맞히는 것이 꽤 치명타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익명성 모임에서 직업을 숨기거나 심지어는 속이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직업 프레임 안에서 이해하는 것도 싫고, 직업을 밝히는 순간 제게 ‘다소곳이, 차분하게, 예쁜 말만’ 태도가 기대되는 것도 싫기 때문이죠. 물론 우린 네게 그런 것을 요구한 적 없어! 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저는 “선생님이신데 의외네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어요. 이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행동양식이, 유난히 교사에게 강하게 적용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요. 적어도 제가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 유지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얼마 전 공무원의 ‘품위 유지의 의무’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있었어요. 유명해서 모두가 아실 것 같은데, 병무청 공무원이 몸에 새긴 문신과 피어싱으로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은 일이에요. 여기서 해당 공무원은 자신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징계 취소를 요청했죠.
사실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된 품위 유지 의무 조항 자체가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커서 논란을 낳곤 했었습니다. 업무를 하는 데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얼굴이 어떻든 무슨 상관일까요. 음주운전이 감봉 1개월인데, 문신은 3개월이라니 불복할 만했다 싶기도 하고. 그러나 사회의 정서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댓글이 아주 안 좋게 달렸어요. 아직 공무원에게 문신과 피어싱의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출처 : 하혜빈, “품위 유지 위반...(중략)”, jtbc, 20.02.04.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32741)
때는 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 교사도 활발히 SNS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서 교사들의 유튜브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물론 대부분은 수업에 관련된 콘텐츠이지만, 개인적인 콘텐츠도 많이 눈에 띕니다.) 한 계정의 인스타그램에 교실 풍경, 셀카, 서핑하는 모습, 맛집이 함께 업로드됩니다. 한 계정의 유튜브에 출근 준비 v-log, 교실에서 하는 랩, 아이들과 찍은 ucc가 함께 올라오죠. 교사도 사람이라 업무시간 이외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을 하고 얼마든지 sns에 올릴 자유가 있는데, 이 자유는 어디까지일까요. 대부분의 콘텐츠는 환영받지만, 안타깝게도 싸늘한 대중의 시선이 일부 존재합니다.
“선생님이 수영복 사진 올려도 돼?”
“교실에서 sns하느라 애들은 뒷전이겠네.”
아니, 선생님도 몸매 자랑하고 휴가 인증하고 싶습니다. 젊을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또 올려보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참 편한데, 여기서는 솔직하게 제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는 sns상에서 자신의 신분이 교사임을 밝힌 이상에는 게시물을 가려 올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교사의 sns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더 큰 관심을 받는 것 때문에, 교사에게 씌워진 이미지를 홍보에 역이용하는 선생님들을 간혹 보았습니다. 교사라는 것으로 sns를 홍보한 후에 술 먹거나 담배 피는 사진을 올리는 선생님들을 보면, 아이들이 보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구요. 퇴근 시간 이후에는 뭘 하든 교사의 자유니까 괜찮은 것일까요?
교사가 질 좋은 창작물을 생산하고 자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세상, 정말 좋아요. 교사는 공부만 잘 하는 집단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 역시 환영이죠.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sns운영을 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를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거에요.
그럼 도대체 품위 유지를 어디까지 해야 하냐고요? 애석하게도 사람마다 기준도 평가도 다르기에 뭐라 딱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애정행각이 멋지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꼴사납고 눈살 찌푸리게 되는 것처럼요. 굳이 말하자면 사회의 분위기와 통념을 따르는 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사회의 통념이 그릇된 경우에도 따라야 하냐고요? 변화를 이끄는 집단행동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수영복 사진으로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교사를 응원하기 위해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찍어 올린 수많은 러시아 교사들처럼요. (출처 : 하종훈, “품위 부적절? 선생도 사람이다...”(생략), 서울신문, 19.04.01.,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401500076&wlog_tag3=naver)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10년 전에는 허용되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고 지금 불편한 것들이 10년 후에는 과거형이 되겠죠. 지킬 것을 지키면서 표현하다 보면, 후배 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라떼는 말이야~ 유튜브라는 동영상 사이트가 있었는데 말이지. 거기에 다들 그렇게 선생님 브이로그를 올렸어요. 그럼 이렇게 뒤에 초록 칠판이 있고 분필이라는 걸 들고... 근데 그걸 겸직허가서를 받아야 되고~ 광고를 붙이면 또 엄청 복잡해지고~ 말도 안 된다고? 지금은 뭐 안 되는 게 없는 진짜 좋은 세상이야. 감사하면서 학교 다녀~ ”
** 연재시리즈 <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
10월부터 12월까지, 1일과 15일에 두 번 연재됩니다. (총 6회)
다음 편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해' 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