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7.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 살펴보는 셀프 상담기
며칠 전에 교실에 있다 혼자 울컥했다. 이 글은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 살펴보는 셀프 상담기록지이다. 꽤 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 글에는 사진도 없다. 그래도 슈퍼우먼은 안 하겠다고 야심차게 이야기를 시작했던 내가 왜 또 울었는지 궁금하시다면, TMT(Too much talker)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다.
/나의 하루
나는 요즘 평일에 이렇게 산다. 30분정도의 오차가 있는 날도 있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이러하다.
7- 8시 |
운전(출근) |
8-15시 |
<교사> |
15-16시 |
운전(퇴근) |
16-22시 |
<엄마> |
<교사>
교사로서는 일주일에 하루나마 학생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등교하며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알콩달콩한 추억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참 좋은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난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동학년끼리 맞춰가야 할 것이 많아졌는데 관계가 좋지 않으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원격 수업 때 학생들이 활용할 학습꾸러미를 만드는 일도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제법 손에 익어가고 있다. 먼저 내가 EBS편성표에 따라 기본 주간학습안내의 표를 작성한다. 그리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EBS 시간표 이외의 원격수업시간을 채울 아이디어를 모아 역할을 나눈다. 선생님들께서 각자 맡은 분량의 활동지를 보내주시면 다시 내가 수합하여 편집한다. 내가 동학년의 막내여서인지 워드편집은 손 빨리 할 수 있는 일이라 나서서 하게 되었는데, 매번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고맙다 해주시고 예뻐해주시니 뭔가 일을 잘 해나가고 있다는 뿌듯함도 얻을 수 있었다. 육아시간을 쓸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퇴근을 한다.
<엄마>
학교에서 퇴근한 후에는 엄마로서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제 17개월이 된 아기 노아는 긴급보육으로 어린이집을 가고 있다. 오전 등원까지는 남편이 전적으로 맡아 해주고 있어서 아침마다 아기와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히 출근 준비를 하고 가능하면 일찍 집을 뜬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노아는 어린이집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달 초에 노아가 장염에 걸려 어린이집을 못 갔었는데, 설사를 계속 해서 집에서 쉬는 와중에도 ‘어린이집’소리만 들으면 신발을 신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집 가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이것만으로도 복직맘으로서 큰 걱정을 덜은 것이기도 했다.
돌이 되고도 두어달이 지나서야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던 노아는 요즘은 한창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날이 시원하면 하원 길에, 날이 너무 뜨거우면 저녁을 먹고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조심스레 단지 내 산책을 하고 있다. 아기와 함께 걷고 다니는 것이 내게도 운동이 되는지 아기가 잠들 때 같이 꿀잠에 들곤 한다.
얼마 전에는 남편과 많은 대화를 하고 육아/가사 역할을 재조율했다. 덕분에 저녁 시간에 각자 착착 맡은 일을 하고 나면 집안 꼴(?)은 다시 아기와 내일을 살아갈 수는 있을 정도의 적당한 어지러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꽤나 순탄하다 보이는 하루이다. 하지만 위에 상황을 조금만 다르게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것도 나의 하루
<교사>
일주일에 하루, 화요일만 학생들이 등교한다고 교사의 노동이 1/5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왠지 매주 화요일마다 개학식이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개학 직전에 느껴지는 긴장과 부담과 스트레스가 매 주 주말부터 은근슬쩍 시작되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악몽을 꾼다든지, 쉬어도 쉬지 않은 것 같이 뭔가 몸이 삐걱댄다든지, 생각이 많아 잠이 잘 오지 않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학생들을 만나고 보낸 날에는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는데, 그 여파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이 컨디션으로는 자칫 어딘가 아플까 걱정되었다. 단순히 피곤해서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도 너무나 많은 고려사항을 만들게 하는 코로나19 시국이기에 한동안 끊었던 비타민을 다시 챙겨먹기 시작했다.
이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맛있는 음식들을 자꾸 챙겨주셔서 열심히 먹다보니 살이 점점 더 붙었다. 결국 복직하고 살이 빠지기는커녕 노아를 출산하기 전에 임박하는 몸무게가 되어가는 것도 꽤나 속상했다.
학습꾸러미를 수합하고 편집하는 일은 아무리 손에 익는다고 해도 꽤나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수합을 편하게 하기 위해 양식을 통일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하다보니 미묘하게 다른 점과 선, 글씨체 등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을 수정하고, 오타나 실수도 보이는 것들을 찾아 고치다보면 그 날은 ‘하얗게 불태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출판물(?)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아무리 본다고 봐도 항상 숨바꼭질하듯 오타나 실수는 또 숨어있기 마련이었다. 동학년선생님들께 파일을 돌린 후에 하나 둘 실수가 제보될 때마다 수정본, 또 수정본, 또 또 수정본을 만들어 돌리다 보면 ‘내가 이걸 왜 못봤을까.’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 는 자책감이 들었다.
<엄마>
코로나19가 계속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곳에 내가 낳은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할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계속 머리를 맴돈다. 어짜피 긴급보육으로 아기를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이 심해지고 어린이집 휴원이 연장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괜스레 한 번 더 마음이 걸렸다. 나름 씻고 소독한다고 하나 출근을 해서 사람들을 만났던 몸으로 아기를 안아 올리는 것이나, 나름 조심한다고 하나 완벽하게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는 없는 환경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순간순간 커다란 걱정과 두려움으로 압박이 오기도 했다.
출근준비를 하다보면 노아가 깨지 않게 신경쓴다고 해도 아기가 벌떡 잠에서 깨서 엄마를 찾아 나올 때가 있다. 아무리 어린이집을 좋아한다고 해도 노아는 한 번 더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하고 붙어있고 싶어 한다. 엄마를 찾는 이 작은 아기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출발이 늦어질수록 점점 교통체증이 심해져 출근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며 시간계산을 하다가 서둘러 학교로 출발한다.
시간의 압박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도 반복된다. 육아시간은 매일 2시반부터로 상신했지만 하얗게 불태우다보면 실제로는 그 시간을 넘기기가 보통이다. 그러다보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아슬아슬하거나 늦기도 한다. 당연히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죄송해 마음이 무겁다. 퇴근 직전까지 바쁘게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숨도 잠시 못 고르고 바로 운전대를 잡아 집에 도착해 주차하고, 손세정제로나마 빠르게 한 번 더 소독을 하고 어린이집에 뛰어가 아기를 만난다.
아기를 만나서도 한 손에 폰을 놓지 못한다. 학교에서 몸은 떠나더라도 학부모들에게 4시 반까지는 교사로서의 일을 다해하겠다 싶어서, 학교에서 다 챙기지 못한 온라인 출석체크, 온라인 가정통신문 회신 등을 챙긴다. 그렇게 교사 일과 육아와 가사가 혼재된 저녁을 보내고 나면 밤에 아기가 잠드는 것을 확인도 못한 채로 잠이 든다. 물론, 여러 상황으로 인해 4시 반 이후나 주말에도 연락이 계속 되는 날도 있다. 이렇게 빈틈이 하나도 없는 삶이 반복되고 있었다. 당연히, 버거울 수밖에.
/내가 버거운 이유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까지 쉴 틈 없이 달리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나를 가장 버겁게 했던 것은 다른 어떤 상황들이나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몇 달 전에 이 연재를 시작하며 슈퍼우먼(집안일과 직장 일을 모두 잘 하는 여자)은 못 할 거라고, 안 할 거라고 말 한 사람은 어디 갔을까.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내가 대충 못 할 거란 걸 알아서 선언한다고 하긴 했더라.
그렇지만 나는 또 까먹고 애쓰다가 퍼졌다. 나는 어떤 일을 맡아 하다가 어느 순간 집중도가 높아지면 텐션까지도 높아질 때가 많다. 그 때의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상태가 된다. 머리로는 잠깐 쉬고 숨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거부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나는 심지어 운전하는 시간조차 뭔가 유용하기를 바라서 라디오를 챙겨 듣고, 터널에 들어가 라디오가 안 잡히면 그 시간을 못 참고 저장해둔 팟캐스트를 듣다가, 다시 터널을 나오면 라디오로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니까.
/나는 왜 울컥했는가
울컥했던 그 날,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아기 재우고 육퇴(육아 퇴근)’하기는 요즘 계속 실패하기에, 학교에 가서 책을 봐야겠다 싶었다. 일찍 일어나 30분정도 여유 있게 출근하려고 했다. 다행히 집에서 출근 준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주행하다보니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알람이 떴다. 긴급출동 수리를 받고 나니 30분 지각을 했다. 7시도 안 된 시간에 출발했는데 9시가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이다. 미리 교감님과 연락되어 복무에는 문제가 없었고,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해온 편도 1시간정도의 출근길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히 이 날 학교에서는 책 한 줄 읽을 시간은 나지 않았다. 이제 제법 손에 익었다고 생각했던 학습꾸러미 편집은 그날따라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고 잘 안 되는지. 특히 쪽번호 편집이 언제부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편집하면서 숫자가 틀어지는 것은 정말.. 괴롭다. 번호가 , ,3, 4, , 6, 10, 11, 12, 13, ... 이런 식으로 매겨졌다. 이 전까지는 어찌 어찌 하다보면 다시 정상화가 되곤 했었다. 바로 지난주에 학습꾸러미를 편집하면서, 다른 선생님께서 편집 못 하던 부분을 내가 해내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근데 이제 나도 못 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던 효능감도 바닥을 쳤다.
게다가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많이 볼까. 못 할 수도 있지. 그게 왜 그렇게 ‘죄송’할까. 전체적인 편집을 완벽하게 통일하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내가 신이 나서 수정하기 시작했던 일이 갑자기 너무 큰 부담으로 나를 짓눌렀다. 다른 선생님께서 보낸 학습지에 있는 오타까지 내가 다 확인하기로 한 역할도 아무도 내게 맡기지 않은 일이다.
나 스스로도 의아한게, 다른 부탁을 받는 전화가 왔을 때도 끊으면서 “감사합니다.” 인사하곤 한다. 전화를 끊고 나 혼자서 “뭐가 감사해?” 혼잣말 하며 웃고 말지,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에게는 이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결국 울컥했던 날에도 결정타는 ‘눈치’였다. 동학년 회의에서 내가 했던 말에 한 선생님께서 기분이 나쁘실까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소심해서 직접 묻지도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교실에 내려와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직접 가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려야 되나?’, ‘올라가서 말하면 너무 과한가?’, ‘상대방은 신경도 안 썼는데 갑자기 내가 이 얘기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혼자 백 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다른 일로 그 선생님께서 보내온 메시지에 호의적인 분위기를 보고 안심했다.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나 왜 이렇게 살지.
온통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눈을 돌리다보니 나를 돌보지 못한다. 습관처럼, 때로는 반사적으로 “괜찮아요.” 읊지만 정말 내가 괜찮은지는 살피지도 못했다. 다행히도 동학년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가끔 뭣 모르고 “괜찮다.” 할 때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려주시는 진짜 좋은 분들이다. 다행히 나의 남편은 내가 나를 못 돌보다가 가족에게 와서야 감정을 빵 터뜨려도 지혜롭게 나와 대화를 이어나갈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다행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좌절하고 있어도 어느 순간 나를 다시 웃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아기 노아도 있었다. 내가 나를 살피지 못하다가 퍼지면 나만 손해일 뿐만 아니라 내가 관계 맺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너무너무너무나 손해지 않은가.나를 위해서 사는 게 어려우면, 이렇게 남을 위해서라도 좀 나를 챙겨야겠다.
나를 살피려고 오늘은 이렇게 아기를 재우고 컴퓨터에 앉았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며칠 동안 여러 소리가 웅성대듯 복잡하던 머리는 정리가 좀 된 것 같다. ‘이것 참 힘들었겠다.’, ‘저것도 버거웠구나.’ 나의 일과를 정리해 적으며 무슨 남 이야기 듣듯 이제야 내 고단함을 조금은 알아챈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읊조려보기도 한다.
이러고도 아마 내일도 내 일중독적 성향이나 눈치 보는 성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일은‘하던 일을 멈추고 심호흡하기’를 한 번이라도 실천해봐야지. 그러면서 나의 상태를 알아채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짧게 걸리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