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6.아기의 자람은 엄마의 눈보다 빠르다 (16개월)
16개월 아기 노아는 밤수(밤에 자다가 중간에 수유를 하는 것)를 끊은지 꽤 됐었다. 근데 요 며칠 크느라 그러는지 배고프다고 새벽에 깨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나서 잠들기 전에 간식을 조금 더 먹여 배를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노아가 좋아하는 우유를 주려는데 먹기 편한 팩우유도 마침 다 떨어지고, 아기가 편히 잡아 쓸 수 있는 빨대컵도 실종되어 컵에 우유를 따랐다. 여분으로 있던 빨대를 컵에 꽂아 먹여주려는데 컵을 자기 달란다.
안 줬다. 아기에게 컵을 쥐어준다면 입에 딱 맞추지 못해 얼굴 가득 음료를 흘리거나, 각도 조절 못 하고 컵을 확 꺾어서 쏟거나, 혹은 일부러 컵을 뒤집어 쏟고 신이 나서 컵을 흔들어 재낄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러했던 처참한 현장. 이 식탁 근처에서는 사진을 찍을 정신도 없도록 혼을 쏙 빼놓은 수 많은 현장이 있었다.)
노아는 삐졌다. 삐질 때 저런 표정, 저런 동작을 하는 것은 누구한테 배웠을까? 먼저 꼭 몇 걸음 멀리 떨어져 거리를 둔다. 그러고는 고개 훅 돌려 말 그대로 토라지기도 하고, 앉거나 누은 상태에서 다리를 콩콩 구르거나, 세상 억울함을 담아 바닥을 손바닥으로 치기도 한다. 아기는 양욱자의 거울이라고 해도, 내가 그래도 ‘으른’인지라 저렇게 대놓고 삐진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속상함의 몸짓 표현은 본능인가 보다. 여튼 그렇게 삐졌다가도 우유를 먹고 싶기는 한지 몇 번을 나에게 다가왔다가, 내 굳센 손이 컵을 안 놓을 거 같으니 다시 몇 걸음 떨어져서 삐지다 서럽게 운다.
“응, 노아가 하고 싶은 거 알겠는데,
이거 그냥 주면 노아가 쏟을까봐 걱정돼서 못 주겠어.
엄마가 노아 못 믿어서 미안해.”
나도 좀 버텼다. 그동안 컵으로 들고 먹는 것도 연습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닦기 편하고 잘 마르면 문제없는 그냥 순수한 물일 때지. 이미 아기 몸도 다 씻겼는데 우유 흘리면 몸에, 바닥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노아도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달라고 달라고 울고 버틴다.
"알겠어, 줄게~"
그래, 내가 졌다. 아기가 잘 먹는 게 우선이니까.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기 목에 빠르게 손수건을 매고, 컵을 하나 더 가지고 왔다.
"아가 그렇게 하고 싶다 하니 조금씩 줄게~”
바닥에 깔릴 정도로 우유를 조금 따른 컵을 아기 손에 쥐어주고 여차하면 컵을 잡아 들 각오로 조마조마하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잘 마신다!
컵에 따른 우유를 잘 마시려면,
일단 컵을 양손에 꽉 움켜쥘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컵에서 음료가 나오는 부분과 입의 위치를 정확히 맞추기도 해야한다.
게다가 자신이 꿀꺽꿀꺽 음료를 마시는 속도와, 컵과 목의 각도를 꺾어서 우유가 흘러나오는 양을 적절히 맞추기도 해야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우리 아기 노아가 너무나 잘 하고 있었다.
꿀꺽, 금방 마시고 “우유 더 줄까?” 질문에 “주”, “주” 하며 컵을 내밀고, 몇 번이나 스스로 우유를 마시는 노아의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다.
녀석, 언제 또 이렇게 큰 거지? 나의 관찰이 아기의 성장 속도를 못 따라갔나 보다.
스스로 무언가 하고 싶은 아이. 우유를 마시고는 혼자 장난감과 책을 끄적이며 놀고 있기에 그 틈에 이 글을 썼는데 갑자기 장난감 더미에서 간식 먹던 숟가락을 발견하고는 설거지통에 “덜컥” 넣고 온다. 키 안 맞아서 설거지통은 잘 보이지도 않았을 거고, 특별히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아가는 다 보고 배우고 있었나 보다.
“우와, 노아가 숟가락을 설거지통에 갖다둔 거야? 최고최고!!”깜짝 놀라 엄지를 척 들고 아기의 행동을 읽어주니 빵끗 웃으며 안기러 온다.
“엄마가 노아 이렇게 큰 거 못 알아채서 미안해.”
꼭 안아주며 사과했다.
이렇게 “내꺼내꺼”, “내가내가”의 시기가 시작되나 보다. 이 때 ‘떼’나 ‘고집’으로 보이는 행동도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아기의 자율성도 자라나는 시기라고 언뜻 들었던 것 같다. 아기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숟가락, 컵, 여러 도구들을 내어줘야겠다. 아기가 스스로 해낼 행동들이 나를 보고 배운다니 또 한 번 긴장이 된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노아에게 주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도록 조금 더 힘 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