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을 배우다09]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자!
교육연극을 배울 때, 학교를 마치고 저녁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밤 9시쯤이었다.
그리고 집에 오기까지는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집에오면 바로 잘 시간이었다.
교대생 때는 거의 종점에 가까운 집과 학교를 오가며 지하철은 거의잠만 자던 곳이었다.
하지만 교육연극을 배우며 퇴근하던 길에 지하철은 그 어느곳보다 집중이 잘 되는 작업실이었다.
지하철에 자리를 잡자 마자, 무릎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펴놓고 그날의 일지를 써내려갔다.
자동차로 이동하게 될 때에도 옆자리의 남편에게 수업에서 있었던 경험과 관련된 주제로 한창 수다를 떨었고, 집에 들어온 늦은 시간에도 차에서 못 쓴 일지는 그 날 밤에 꼭! 마무리하고 잤다.
수업의 감동이 조금이라도 사라질까, 아쉬웠던 것이다.
교육연극을 배우면서 몸으로 하는 수업도 많았기에 몸의 배터리는 꺼져가야 마땅했지만,
그 밤의 내 눈은 얼마나 똘망똘망했던지.
그만큼 교육연극을 배우던 시간은 참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주입식교육에 철저하게 절어 살아온 나는 공부가 즐거운 이 경험이 정말 낯설었다.
공휴일로 인한 휴강이 생기면 그 한 주가 너무나도 아쉬웠고(!!)
처음 교육연극을 배우려고 했을 때 기대했던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더해가며 나를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정말 놀라웠다.
그만큼 열심히, 즐겁게 배웠으니 이제 적용할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나 답게'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배움이 즐겁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막상 시작하려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자, 교실운동장*을 만들어볼까?"
*교실운동장: 교실에 책상을 구석으로 밀고, 몸으로 활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아이들과 이렇게 불렀어요:)
저 마법같은 한 마디가, 얼마나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지..!
교육연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놀이만 잠시 하려고 해도
놀 준비만 하는 데도 소리지르고, 밀고, 싸우고, ...
‘줄서기’까지 하려다보면 어느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놀이인가, 자괴감이 든다.
더 큰 걱정은, 아직 나도 연극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모습을 아이들이 낯설어하진 않을까?’
‘갑자기 상황을 시작하면 쌩뚱 맞게 느끼진 않을까?’
‘내가 그렇게 특별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닌데.. 비웃으면 어쩌지?’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머뭇거릴 수록, 아이들이 연극을 만날 기회는 더 줄어들 뿐이다.
'딩동댕동' 종이 친다.
잠시 눈을 딱 감는다.
두려움과 걱정, 오글거림, ...부정적인 마음들을 잠시 접어두고
옆에 있던 안경을 집어들어 쓰고 아이들 앞에 선다.
4학년 1학기 사회 (2)단원 <신도시 만들기> (2009교육과정에서 진행했던 수업입니다.) 이 수업과 관련된 자료는 초등선생님들의 보물창고인 인**쿨에 아주 많이 올라와있다. 넓은 지도와, 멋진 건물들을 만들 수 있고, 그 신도시를 소개할 수도 있는 자료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업을 거쳐 다양한 팁들까지. 그 자료들을 활용하되, 학생들이 ‘신도시 건설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초대하려고 한다. 교사가 ‘찬슬(반 이름입니다)시 시장’이 되어서! 찬슬시장: (안경을 쓰고) 에헴,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찬슬시 시장입니다. 오늘 찬슬시에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오신‘신도시건설 전문가’ 여러분들을 모두 환영합니다.정말 여러 회사에서 와주셨네요(학생들 모둠을 하나씩 짚어준다).찬슬시에 가장 멋진 신도시가 세워질 수 있도록, 충실한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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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업의 도입을
“자, 사회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신도시 건설 전문가가 되어볼 거예요.”라고
학생들만 역할에 초대하며 할 일을 설명할 수도 있다.
아마 교육연극을 배우기 전의 나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역할 속에 먼저 들어갔을 때, 교실이 ‘신도시 건설 준비-발표회장’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 시작에는 평범한 안경이 있었다.
나는 양 눈 시력 1.5, 1.5로 평소에 안경을 쓰지 않는다.
저 안경은 전자파를 막아준다고 하여 구입해서 컴퓨터를 오래 써야할 때, 주로 방과후에 쓰던 안경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을 때 안경을 쓴 모습을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렇게 낯선 물건이 아니니,'평소와 다른 수업'을 준비하던 긴장감을 소품만큼은 덜어주었다.
아주 작은 변화인데도 학생들은 안경을 쓰고 앞에 선 교사를 ‘뭔가 다르게’ 봐주었다.
그렇게 외모와 목소리가 그대로이며 나이도 20대밖에 안 되었고 긴장감에 발연기를 하는 ‘찬슬시장’이 이끄는 상황에 빠르고 흥미롭게 몰입한다.
덕분에 아주 열기가 넘치는 신도시 건설 전문가들의 신도시 계획-발표회가 진행될 수 있었다.
몇 차시 후, 이어지는 사회 3단원 내용은 선거에 대해서 배우고 직접 선거를 해보는 활동이기에 우리반은 ‘찬슬시장’을 뽑기로 했다.
시장을 뽑는 과정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데 아이들이 묻는다.
"시장 되면 안경 받을 수 있어요~?"
아이들의 그 반응을 보면서 교육연극의 시작, 별 것 아니여도 괜찮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평범한 안경 뒤에서,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길 참 잘했다.
*오늘의 교육연극 Tip!
교사가 연기에 자신이 없을 때, 교육연극을 활용한 수업을 준비하기가 참 부담스럽지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만 역할을 부여하고 교사는 한 발 떨어져서 진행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사가 먼저 역할을 입고 학생들을 초대할 때, 학생들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상황에 몰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교사가 한 역할을 맡아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교육연극에서는T.I.R (Teacher In Role)이라고 합니다.
저처럼 아직 교육연극이 낯설고 떨린다면, 소품을 활용하시기를 더욱 추천합니다. 제가 평범한 안경을 활용했던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도 좋아요. 겨우 안경인데도, 저는 가면 속에 들어가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이왕이면 특이하고 웃긴 안경, 모자를 활용하면 더욱 좋구요! ‘으하하’함께 웃고 말랑말랑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다면 더욱 유연하고 즐거운 연극 수업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서울교대 교육연극지도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적는 글입니다. 제가 기록한 내용들이 모두 교육연극의 정설이나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