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 12. 한 해를 돌아보며, 고마운 너에게(23개월)
고마운 노아에게.
노아야 안녕. 엄마야. 너가 뱃속에 있을 때는 태교교육이다 만삭촬영이다 해서 너한테 자꾸 편지쓰라는 미션이 있었는데. 낳고 나니 아직 네가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편지를 쓸 일이 없었네. 그래도 언젠가 이 글을 네가 직접 읽어줄 날도 있겠지? 2020년을 돌아보면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담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써.
올해 엄마는 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어. 처음 복직했을 때는 네가 막 돌 겨우 지난 때라, 엄마 젖도 못 끊은 너를 두고 출근해야 해서 눈물 났던 기억이 나네. 여기저기서 애착을 잘 형성하려면 아기랑 떨어질 때 몰래 가지 말고, “엄마 어디 갔다 올게~”얘기해주라고 하던데. 엄마는 매일 아침 노아가 눈 뜨기 전에, 해도 뜨기 전에 집을 나서느라 그런 이야기를 못했었지. 대신 전날 밤 잠들기 전에 “내일 엄마 학교가. 노아 일어나면 엄마 없을 거야. 아빠랑 아침 잘 보내고 어린이집 다녀와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나면 엄마가 노아 데리러 갈게.” 이야기해주곤 했어. 분명 다 못 알아들을 텐데도, “내일 엄마 학교 가.” 얘기 들으면 너는 “으앙”하며 슬픈 표정을 해주었지. 길게 울지 않아 고마우면서도, 또 우는 시늉이라도 해준 것이 참 고마웠단다. 엄마도 너를 두고 가는 것이 아쉬웠거든. 아쉽다고 엄마가 출근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엄마 마음은 뒤로 미뤄뒀었는데 말야. 감정 표현에 솔직한 네 덕분에 내 마음도 한 번 다시 돌볼 수 있었단다.
<노아의 2020년 봄> 컵으로 먹으면 흘려서 안 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아기가 너무 잘 마셔서 놀랐던 날
어린이집에 즐겁게 다녀줘서 고마워.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잦은 외출을 해서 그런가? 어린이집 첫날부터 찡끗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역시 노아다!’ 생각하면서도 어이없었었는데. 어린이집 다니면서 가끔은 감기를 옮아와 아프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의 손에 긁혀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린이집 “됴하(좋아)!” 얘기해주어서 참 고마워. 덕분에 엄마 아빠 마음이 가벼워. 때로는 어린이집과 관련된 나쁜 뉴스들이 너무 많아서 잔뜩 쪼그라든 마음에, “선생님 좋아~ 싫어~?” 떠보는 소심한 엄마라 미안해. 아직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네 말로 다 들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하는 생각에 무섭고 걱정도 돼. 부디 네가 만나는 모든 어른들이 너를 사랑해주길, 아니 최소한의 상식은 갖춘 사람들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단다.
<노아의 2020년 여름2> 하원길. 아빠 따라 뒷짐 지고 걷는 노아
엄마도 엄마가 학교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그런 마음으로 대할게. 엄마도 사람인지라 매일 하루 10분도 틈 없이 살다 보면 지치는 날도 있어.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 쓰고 수업하는 것도 꽤나 힘든데,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게 하고, 친구 마음을 해치는 학생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해. 근데 집에 와서 마냥 반짝이는 너를 보면 “아, 우리 반 OO이도 집에서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겠지?”싶어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 노아야, 너를 낳고 만나본 덕분에 엄마는 다른 어린이들 한 사람들도 더 귀하게 보여. 학교에서의 질서보다도 학생 개개인의 빛나는 개성을 더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해. 느려도 괜찮다고, 달라도, 틀려도 괜찮다고. ‘괜찮다’는 말이 많이 늘었어. 있는 그대로 소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물을 찾는 눈으로 바라보게 돼.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얼마나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었던 걸까 반성해. 네가 없었으면 몰랐을 거야. 정말 정말 정말, 고마워.
<노아의 2020년 여름> 산책하다가 주운 나뭇잎으로 우산놀이하던 날
노아가 태어나고 엄마는 겁도 많이 늘었단다. 나의 천사, 나의 요정. 이 작고 예쁜 네가 갑자기 사라지게 되진 않을까, 여러 재해 상황들, 사고 소식들을 뉴스로 볼 때마다 나와 네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나는 널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하고 두려워. 그래서 그런 사고 소식이 남 일 같지 않고, 작은 서명이라도 하여 연대하려고 하게 되어.
대단한 사고가 아니여도 요즘은 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미안한 날도 많단다. 너가 태어났을 때는 ‘최악의 미세먼지’라며 바깥 세상 걱정을 했었는데 말야. 올해는 코로나19가 심해져서 너의 1살 때보다도 여행도, 외출도 더 많이 못했지. 새로운 곳에 가서 구경하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노아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워. 답답한 마스크를 꼭 껴야 하고, 네가 좋아하는 ‘터(놀이터)’도 그냥 지나쳐 가야하는 날이 많아서 참 미안해. ‘이 땅에서 앞으로 노아는,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을 이어가다보면 여전히 막막하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고자 쓰레기도 줄이고, 분류배출도 확실히 하고, 한 끼 정도는 비건으로 식사를 차려보기도 해. 대단한 실천을 하지는 못하는 엄마이지만, 엄마의 작은 실천이 이 땅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노아가 이 글을 읽기 시작할 수 있을 때쯤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노아의 2020년 여름> 마스크 쓰고 다니는 하원길. 비눗방울과 간식, 기저귀가 들어있는 엄마의 가방을 들어보려고 애쓰는 노아
사랑하는 나의 아가 노아야. 너는 올해 말이 많이 늘었어. 요즘 밤마다 매일 같이 노래 부르면서 마지막 음절을 따라하는 네가 참 귀여워. 모두를 뚠뚠(23개월 아기 노아는 곰세마리 노래를 ‘아빠곰은 뚠뜬해 엄마곰은 뚠뚠해 애기곰은 뚠뚠해’라고 부른다. 엄마아빠는 ‘튼튼해’라고 듣기로 했다.) 하게 만들어버리는 너만의 곰세마리 노래도 참 사랑스럽고. 복직하면서 네가 처음 걷는 모습을 보지 못할까봐 아쉬워하던 엄마 걱정이 무색하게 함께 있던 저녁 밤에 갑자기 엄마 아빠 사이를 왕복하던 아장아장 너의 첫 걸음마는 올해 엄마의 최고 황홀했던 순간이야. 지금은 쿵쾅쿵쾅, 살금살금 걸음을 조절하기도 하지. 자기가 스스로 컵도 쥐고 먹고, 숟가락질도 하고, 기저귀도 입어보겠다면서 어설프지만 대견한 손놀림을 해. 엘리베이터에서 너를 잃어버릴 뻔한 일로 너무 놀라서 서둘러 네 손목에는 예쁜 달이 그려진 팔찌를 채우기도 했지. 키도 벌써 엄마의 반을 넘어섰고. 이렇게 매일매일 너는 쉼 없이 자라고 있네.
<노아의 2020년 가을> 엄마 등에 매여 등산 중. 나무를 타고 다니는 청설모가 나타나 고개를 바짝 들고 구경했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2살을 보내면서 열심히 성장하고 있단다. 알다시피 엄마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잖아. 매일 하루하루 허덕이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 엄마의 얕은 체력과 지혜와 사랑으로는, 노아를 다 품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어찌어찌 하루가 무탈히 지나가는 것에 또 감사하기도 해. 매일 밤 “내일도 노아와 함께하고 하루를 보낼만한 지혜와 사랑과 체력을 허락해주세요” 손 모아 기도하는 덕분일까? 앞으로도 엄마는 모자라는 부분들이 있을거야. 엄마의 실수가 있을 때는 노아에게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할게. 우리 생각이 다를 땐 찐하게 얘기를 나눠보자. 노아 의견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엄마도 고집부리고 주장하지는 않을게.
때로는 사알짝 엄마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이해해주렴. 충전하고 돌아와서 다시 노아랑 즐겁게 뒹굴뒹굴 놀기 위한 시간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 같이 커가자.
<노아의 2020년 겨울> 장갑에 눈을 묻히고 엄마아빠에게 묻힌다고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따라오는 노아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구나. 긴 편지지만 정말 한 마디로 줄이자면,
올해도, 모든 순간에, 고마워 노아야. 3살 엄마도 잘 부탁할게. 잘 지내보자. 그럼 안녕!
2020.12. 노아 엄마 이서로 .
*이 편지는 노아의 ‘두살책’ 포토북 마지막 언저리에 넣어주려고 해요.
(1) 매달 스마트폰에 아기 사진들 컴퓨터로 백업하기
(2) 그 중 월간 베스트 사진들 골라두기
(3) 연말 연초에 일년치 편집하여서 포토북 만들기를 하고 있거든요!
(아, 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작년 한 번 해본 거지만요.)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기 어려운 이번 겨울, 함께 포토북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한 해를 돌아보는 편지가 함께하면 더울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