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을 배우다 13]스토리드라마를 배우며 알게 된 나
지난 글 ‘[교육연극을 배우다 12]스토리드라마’(클릭하시면 링크로 넘어갑니다!)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쏘피’스토리드라마는 교실로 가서 바로 수업을 해보았다. 그만큼 구성이 단순명료했고 마음에 쏙! 들었다. 쏘피 외에도 『나는 누구일까?(박상은, 현북스)』, 『내 모자 어디 갔을까?(존 클라센, 시공주니어)』, 『여우(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파랑새)』 등등! 다양한 동화책을 만나면서 스토리드라마를 익혀갔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들을 만나고 스토리드라마와 슬슬 익숙해질 쯤, 스토리드라마를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스토리 드라마 만드는 방법 1. 그림책을 여럿 찾아 읽어봅니다. 2. 이야기에서 ‘중심 주제’를 고릅니다. -어떤 이야기는 나누고 싶은 주제가 여럿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심 주제가 여럿이 되면 수업의 초점이 흐려지게 되겠지요? 교사는 그 하나의 중심 주제를 명확하게 잡고 수업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해요. 흐름에 따라 학생들에게는 주제가 빨리 드러내지 않더라도요. 3. 이야기의 플롯을 찾아 얼개를 짭니다. -스토리가 단순히 ‘벌어진 일들’이라면, 플롯은 ‘그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하는 결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플롯을 구성할 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 주제가 흐려지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야기의 흐름이 비약이 되지 않고, 논리적 흐름이 매끄럽다면 필요에 의해 이야기를 빼거나 더하거나, 심지어는 바꾸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4. 중요한 포인트들을 ‘열어놓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저는 스토리드라마를 ‘이야기에 구멍을 뚫고, 구멍난 그 부분에서 참여자들이 본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연극적으로 표현해보는 것’라고 정의했었습니다. 이 정의에서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 이 과정입니다. 이 구멍을 통해 참여자들은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을 나눕니다. 각자의 이야기들이 단순히 나열되는 것보다는 이야기들이 만나면서 더욱 확장되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
나만의 이야기를 골라서 스토리드라마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가 그냥처음이여서, 단순히 과제이기에 어려운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스토리드라마와 진~하게 만나보니, 턱턱 막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 부분들을 통해서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토리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나의 첫 번째 모습은, 내가 예쁜 이야기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여우’ 이야기『여우(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파랑새)』를 보면서 이런 모습을 절절히 느꼈다. 여우 이야기는 처음에는 서로를 채워주는 완전한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새로운 존재의 등장으로 생겨버린 불안한 삼각관계, 관계에서 호감과 비호감의 엇갈림, 불길하게 흘러가는 상황과 유혹, 관계의 깨어짐,.... 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져간다. 결국 결말도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았을 때 ‘이렇게까지 가야했나?’ 생각이 들만큼 허무하고 놀랐다. 교육연극 수업에서 배운 것을 교실로 가서 적용해본 것이 많았지만, 이 책만큼은 ‘나는 못 풀어갈 것 같다.’고 강력하게 생각했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불편했다.
그렇지만 교수님은 물으셨다.
‘이야기 속에 이런 감정들, 느껴본 적 없어요?’
친구들 관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던 경험... 맞다. 나도 있다. 겪어본 적 없는 감정이나 경험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왜 이 이야기가 이리도 불편하고 피하고 싶을까?
사실 나는 이야기책을 볼 때만 아니라, 영화를 볼 때도 불편한 감정들이 오갈 것 같은 영화는 싫어했다. 조금 억지스럽더라도 결론이 잘 맺어진 훈훈한 이야기의 영화를 주로 골랐다. 그런 결말을 봤을 때의 평안한 감정 상태, 구름 위에 둥둥 있는 듯한 적당한 기분 좋음이 좋았다. 말 그대로 ‘동화’같은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니 여우와 같은 이야기가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 복잡하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훨씬 많다. 하지만 어느 답을 골라도 딱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불편함을 견디며 나름대로의 선택을 했을 때,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혹 그 결정이 실패의 경험을 만들더라도 진한 배움이 되는 때도 있다.
“훈훈한 이야기는 그만큼이나 뻔한 결론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도덕책 속 이야기들이 훈훈하긴 해도,
자칫 진지한 고민 없이 너무 뻔한 결론으로 이어져서 지루하기도 하죠.
“너무 아름다운 것만 다루는 학교를 아이들은 지루해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추한’이야기를 다루어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플롯만 가지고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하기 어려워요.”
“교육연극은 ‘도덕수업’이 아니라 ‘예술수업’이니까요.”
정석에서 벗어난 듯한 이야기를 활용했을 때
더 재미있는 수업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딴지 걸고 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갖고,
진심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사가 준비하지 않은 이야기 흐름에 빠져보기도 해야합니다.
끄덕끄덕, 교수님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골라 구입해서 학급문고에 꽂아둔 동화책들은 대체로 훈훈하고 예쁜 이야기만을 담고 있다. 이 흐름과 다른 그림책들은 잘 모르고 막연하다. 교사가 보는 시야에 따라 수업이 달라진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 그 시야가 넓지 않았다.그러다보니 스토리드라마 만들기 1단계, 그림책을 여럿 찾아 읽어보는 것부터가 막혔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인지, 수업 한 시간을 투자해서 둘러 앉아 함께 배우는 선생님들이 골라온 그림책을 함께 나누어 보면서 고민하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선생님들은 그림책을 돌려보며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고 어떤 주제가 보이는지, 플롯은 어떻게 잡고 싶은지 나눈다. 함께 수업을 준비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손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멈칫멈칫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나의 두 번째 모습은, 이야기를 열어두기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스토리드라마는 이야기에 .oO구멍Oo.을 뚫어 그 빈 자리를 참여자들의 표현으로 채운다.
o그 구멍이 너무 작으면 참여자들의 자유가 제한되고, 또 다시 뻔한 수업이 되기 쉽다.
O구멍이 어느 정도 커져야 훨씬 극적이고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멍이 커지면 수업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부담도 함께 커진다. 수업이 내가 생각한 흐름과 달라진다면 나는 정말 긴장하고 당황하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원래 준비와 연습에 노력을 정말 많이 쏟는 편이다. 학창시절에도 발표문을 달달달 외우기 위해 엄청 연습을 하고는 발표를 하는 순간에는 긴장해서 말이 항상 빨랐다. 준비가 많아지다보니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과해져서 더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그 버릇이 어디 안 가서, 교사가 되어서도 학생들이 하교한 오후시간은 물론, 나의 저녁시간, 주말까지 수업을 준비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까지 다 예상해보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다보면 잠들려고 침대에 누워도 계속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못해 꿈에서도 수업을 하곤 한다.
하지만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더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수업에 여백과 여유가 없었다.예상한 수업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고, 시간은 겨우 맞추더라도 충분하게 피드백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포기하게 되는 날도 많았다.
성실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완벽을 꿈꾸며 쉼 없이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불안감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 것부터가 나에게는 굉장히 큰 발전이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기로 한다. 교수님께 ‘이야기를 열어두는 것이 두려워요.어떻게 하면 될까요?’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나를 햇병아리 같다는 듯, 하지만 애정을 담아 바라보시고는 이야기해주셨다.
“조금 더 실패해 봐요.”
본인이 진행했던 한 수업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수업을 했었어요. 진지한 분위기로 수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한 학생이 ‘죽은 사람들 이야기에 왜 이렇게 열을 올리냐?’고 하더라고요.”
두둥.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대답은 하되, 바로 말을 돌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고는 학생에게 더 이야기할 여지를 주지 않는 형식적인 교사의 답변은 ‘수용을 가장한 거절’이라 하신다.
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런 답변을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아마 수업을 더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나의 준비가 더해지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답변을 열심히 준비해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쳤을 것이다.
만약에 더더욱 열심히 애정을 가지고 준비했다면,학생의 그 반응에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점입가경이다.
교수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이럴 때 그 찬물 끼얹는 말에 엄청 진지하게 반응해줘야 해요.
‘그러게, 맞네. 사실 그렇잖아.’인정하는 거죠.
그러고는 말을 돌리지 않고 함께 고민해요.
교사를 대신해서 그 친구를 구박하려고 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사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되물어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오늘 이 학생이 진지한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같이 생각 좀 해보자”고 초대하면서
진지한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이 때 교사도 쉽게 답하면 안 돼요.
쉽지 않은 질문일수록 침묵이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침묵을 견디고 나면, 어떤 답이든 나오게 되어 있어요.
수업이 샛길로 새다보면
때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준비한 수업을 다 못 할 수도 있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꺼내지도 못하는 날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가다보면
학생들이 항상 의미 없는 결론만 내지는 않더라고요.
학생들이 건 딴지를 충분히 수용했을 때,
학생들도 점점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지금은 ‘오늘은 또 어떤 쌩뚱맞은 질문을 통해 나의 지경이 넓어질까?’
기대하며 수업을 준비해요.”
정해진 교육과정, 정해진 수업 시간, 학습 양 과다,... 여러 핑계를 대본다. 하지만 솔직하게 성찰할 때,이야기를 열어놓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겁나기 때문이다. 실패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계속자료를 찾고, 자료를 만들고, 대사를 짜보고, 달달달 외운다. 그래서 다 차려놓고 학생들에게 떠먹기만 하라는 수업을 준비하곤 한다. 샛길로 샐 여지를 최소해왔다. 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스토리드라마 만들기’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다.하지만‘교육연극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기’라는 교육연극을 배우는 더 큰 목적에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때로는 딴소리 같기만 한 흐름에 빠져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던 자신을 알아가게 될 때도 있어요.
수업이 더해갈수록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의 나도, 실패를 통해 나를 알아간다.솔직하게 직면하는 나는 시야도 좁고, 겁도 많다.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실패할 용기도 없다. 그래도, 이게 나인걸. 인정한다. 그렇게 좁은 시야와 작은 용기로도 열심히 살아온 나를 토닥토닥해주며,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나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딴지를 기대하는’지경이 궁금하다. 학생들을 통해 나도 배우고 성장한다는 말이 정말 수업에서, 삶에서 녹아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