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을 배우다10]즉흥연기, 어렵지 않아요.
“오늘은 즉흥 연기를 해볼 거예요.
지금은 8시 10분. 여러분은 만원 버스에 있습니다.
누군가 내 발을 아주 아주 아프게 밟았습니다.
아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발을 밟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앞 사람은 자기는 절대 발을 안 밟았다고 하네요.
내가 사과를 하거나,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야 끝이 납니다.
자, 짝꿍 둘 중 원하시는 분이 먼저 시작하세요~”
즉흥연기라니, 즉흥연기라니!
연극놀이에 가까웠던 수업 내용에 슬슬 연극적인 요소들이 더 들어오나 보다.
나보다는 더 용기있던 짝꿍이 먼저 상황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발 밟힌 소리가 난다.
강의실은 금방 출근길 붐비는 대중교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처럼 시끌시끌해진다.
하지만 바깥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시끌시끌하다.
연기가 어색하니까!
그래도, ‘내가 이 상황이면 어떻게 반응할까에 집중해보라’는 조언에 따르려 노력해본다.
더듬더듬, 서툴긴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억울함을 풀기 위해 뭔가 말이 이어지긴 한다.
상대방이 화를 내며 자기주장을 했다면 맞불을 피우며 싸움모드로 돌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짝은 합리적인 시민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
.
.
근데, 어라? 나 즉흥연기를 해낸 거구나!
‘즉흥연기’
이전에 이 단어를 본 건 TV 속 연기자들의 오디션 합격담에서였다.
그들은 금세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거나. 마치 빙의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다보니 즉흥연기는 전문 연기자들의 전유물일 것처럼 이름부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즉흥연기는 내가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이 되길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며 ‘내’가 어떤 모습일지를 표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즉흥연기는 어색하고 어려웠다.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해보니 자연스럽지는 않아도 그렇게 망한 것 같지는 않다.
어찌됐든 하나의 상황이 완성되었으니까!
활동을 마치고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즉흥연기를 다시 재연했다.
함께 배우는 동료들의 연기를 보니,
사과를 잘 받아낸 이야기도,
거칠게 다툼이 이어진 이야기도,
상황이 잘 마무리가 안 되어버린 이야기도
다 나름대로의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즉흥연기, 학교에서 학생들과도 잘 써먹어볼 가능성이 보인다!
(학교에서 잘 써먹어본 이야기, 다음 글에서 나누겠습니다!)
오늘의 TIP!
‘만원버스’의 상황은 즉흥연기를 처음 연습하는데 참 좋았습니다. (1)‘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2)생활 속에서 겪거나 보았을 법한 흔한 상황이었으며 (3)명확하고 단순한 갈등 상황이었기에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져서 참 좋았어요.
그래서 교실에서 즉흥연기를 활용한 수업을 할 때도 처음에는 ‘만원버스’ 상황으로 즉흥연기를 연습해봤습니다.
1. 먼저 학생들의 짝을 짓습니다. 이미 있는 짝을 활용하여도 괜찮습니다.
“자, 짝꿍과 가위바위보!”
2. 상황을 제시합니다
“오늘은 즉흥 연기를 해볼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아침 등굣길 만원 버스에 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휘청~ 하네요!
가위바위보 이긴 사람~?
이 사람들은, 버스가 흔들리면서 발을 아주 아프게 밟혔어요.
아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발을 밟은 것 같아요. 바로 여러분 짝이요!
가위바위보 진 사람~?
내가 발을 밟은 것이 아닌 것 같은 억울한 상황입니다.
내가 사과를 하거나,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자, 이긴 사람이 아야! 하며 시작합니다.
레디~ 액션!”
혹시, 제가 ‘배우던’ 상황과 차이가 보이시나요? 제가 배울 때는 ‘원하시는 분이 먼저 시작하세요~’로 시작했지만, 학생들은 가위바위보에 따라 역할을 정해줬습니다. 첫 대사도 “아야!”로 시작하도록 했지요. 학생들이 연극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렇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정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3. 짝꿍끼리 각자 즉흥연기를 합니다.
바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발표를 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 짝꿍과 상황에 들어가 바로 연기를 합니다. 저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눈치를 많이 보는 성향이기에 이런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4. 원하는 짝은 발표를 합니다.
저는 3, 4학년 학생들과만 연극을 배우고 수업을 했었는데, 이 친구들은 연극 발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원하는 사람들을 다 시킬 수는 없었네요. 어떤 기준들로 발표했는지도 다음 글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심화!)
이 외에도,
즉흥연기를 할 만한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요?
교육연극을 배우며 이 질문을 들었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는 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갈등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는제 생각을 읽은 것처럼 ‘교사 분들이 이 질문에 ‘학교, 교사, 학생’들의 상황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경우들을 더 떠올려보고 싶었으나, 쉽지 않더라고요.
좋게 보면 교실에 충실하고 몰입해서 살고 있는 것이지만, 저 스스로‘얼마나 좁은 세상만을 보고 살고 있나’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이 떠오르시나요?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어설픈 즉흥연기도 충분하다고 북돋아주셨지만 보다 더 잘하기 해 노력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알려주셨어요.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모습과 나의 생각에 집중하기입니다. 저는 연기, 연극이라고 하면 보통 가면을 쓰는 모습이 떠올랐었는데요, 내가 아닌 것을 표현하는 것이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을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나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 등을 일상에서 관찰하기입니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모습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고 하네요.
우리, 함께 연습해요:-)
/ 서울교대 교육연극지도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적는 글입니다. 제가 기록한 내용들이 모두 교육연극의 정설이나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