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 10. 달리기가 느린 너는 커서도 달리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 (21개월)
아장아장. 이제 21개월이 된 노아. 요즘 노아는 말이 많이 늘었다. 동물 소리를 따라하기도 하고, “아빠 뜐뜐해! 엄마 뚠뚠해! 애기 뚱뚠해! 찌쭈찌주 자댠다!”라며 엄빠만 알아듣는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말이 빠른 아기이지만, 대근육 발달은 느린 편이다. 뒤집기도 4달을 꽉 채워서야 하더니, 걸음마도 14개월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돌을 지나면서부터 잡고 서는 것이나 움직임을 보면 넘어지더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손을 떼면 바로 앉아버리곤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노아는 조심성이 많은 아기인가 봐.” 좋게 좋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마침 복직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어린이집도 보내게 되어서 우리 아기 첫 걸음마를 내가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근데 고맙게도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어느 저녁 밤, 엄마 아빠 사이를 무수히 오가며 갑자기 걸음마를 시작했다.
첫 걸음마를 시작한지 반년 정도 지난 지금, 아기는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한다. 아기가 마음껏 움직이도록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도 하원길에 아파트 단지 한바퀴를 돌고, 주말에 공원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해서 놀러가곤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그런 노아를 한참 따라다니다 보면 “이제 그만...”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함께 따라간 이모 삼촌들까지 하나 둘 KO 시키고도 노아는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니며 행복한 미소를 마구 날린다.
주변 아기들이 아주 재빠르게 뛰는 것에 비해서 노아의 움직임은 느린 편이다. 하지만 노아는 그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세상을 즐길 뿐이다. 그렇게 신난 노아를 보면서 함께 웃다가 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남편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나랑 다른 존재구나 느낄 때가 있다.
그 중 제일 차이를 많이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운동’에 대한 선호와 ‘체육대회’에 대한 추억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다. 체육대회는 정말 날아다니는 순간 중 하나였다. 대표로 계주도 많이 뛰었고, 전체 전략을 세우고 나서기도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농구에 빠져서 프로농구 직관도 많이 가고, 공원에서 공을 튕기며 놀기도 좋아했다. 커서는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은 없어 많이 녹슬었지만, ‘인생취미운동’을 갖기를 계속 소망하고 있다.
남편은 운동을 싫어한다. 애초에 평발이라 많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몸에 무리가 간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을이 제일 싫었단다. 가을운동회가 있어서.
우리 노아는 나를 닮아 운동을 좋아하게 클까,
아니면 남편을 닮아 운동을 싫어하게 될까?
남편과 나는 이렇게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좋아하고 말고의 기준에 ‘내가 그것을 잘하는지’가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승부욕의 발현이 조금 다르게 되었다고 할까. 나는 달리기가 빨라서 운동을 잘한다고 인정받으며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분야에서 나는 남들보다 잘못한다고 느낄 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곤 한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둘 다 있는 이 성향은,
빼박 아기의 성향이 되는 걸까?
지금 저렇게 순수하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노아도, 언젠가 내가 남들보다 느리거나,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행여 남들보다 느리다면 달리면서 신나하는 21개월 너의 이 미소는 멈추게 되는 것일까.그 때는 언제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이 철렁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가수 장기하의 산문집 ‘상관없는 것 아닌가’라는 책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그만두고 나서의 시간 동안 쓴 책이란다. 무기력과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동네서점에서 알려준 책 중 하나였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기는 책을 읽는 것이 느리다고. 책을 읽다가 너무나 자주 딴생각에 빠져버린다고. 그래서 “책 좋아하냐?”는 질문에 항상 머뭇거리며 답을 못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상관없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책 좋아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한다.
우리 사회는 ‘잘하는 것’에 너무나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속에서 자란 나도 자유하지 않다. 그래서 줄 서고, 점수 매기고, 점수를 잘 받는 것에 집중하여 오래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나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교사가 되어서야 깨달았다.(진짜 나는 누구이고, 내 생각은 무엇인지 찾아가겠다고 시작하는 이야기가 지난 ‘교육연극 배우는 이야기’연재글에 주르륵 나와있다.)
그것을 깨달은 나와, 무기력을 이기고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취미를 갖고 싶어하는 남편이 21개월 아기 노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너랑 나랑은 너무 닮아서 처음부터 좋아했었지.
보면 볼수록 내가 보여서 나중에는 걱정도 했어.
... 내 맘대로 널 걱정한 게 좀 미안해.
우린 다른 게 더 많은데.”
(안승준 – 재밌는 여행)
노래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걱정은 내려놓기로 한다. 너의 삶과 우리의 삶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하는 것, 이것도 비교일 수도 있겠지. 자꾸 그러고 싶은 마음, 그렇게 보고 싶은 좁은 시야를 좁은 시야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열심히 숨겨야 겠다.
(콩 넘어지는 일도 많지만, 손 툭툭 털고 쿨하게 일어날 줄 아는 고마운 아기, 노아.)
하지만 마음만 바꿔먹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달리기를 싫어해” 네가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니 너 애기 때부터 달리기 좋아했는데?” 이건 좀 이상한데. 우리 엄마도 자주 어릴 적의 나를 소환해내곤 하셔서 “그 땐 그 때고.”이야기를 듣곤 하셨지. 네가 ‘잘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자체를 알아채도록 돕기 위해서는 어떻게 너와 대화해야 할까. 아직은 막막하다. 나도 그렇게 커보질 않아서.
또한 노아에게 지금 내가 살아왔던 것과 같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할 일이 많아질 테지. 무엇부터 해야 될까. 마음 맞는 사람들부터 만나고 싶다. 어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