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량 7위 국가의 시민으로서
ⓒ박해성
아이들이 격주로 학교에 나온다. 학생 하교 이후 나는 고무장갑을 낀다. 왼손에는 항균 스프레이, 오른손에는 행주를 들고 문손잡이와 게시판, 사물함 표면을 닦는다. 하루 청소의 끝은 쓰레기통이다. 요즘 쓰레기통 차오르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내용물도 예년과 다르다. 끈 떨어진 마스크, 소독용 티슈, 비닐장갑이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학교가 방역의 최전선이라더니 점점 병원 쓰레기통을 닮아간다.
학교 전반적으로 폐기물 양이 늘었다. 학기 초에는 온라인 수업한다고 주문한 마이크, 헤드셋, 스마트폰 지지대, 와이파이 공유기 상자의 양이 상당했다. 퇴근 후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다. 비대면 소비 증가로 택배 아저씨는 대목을 맞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스티로폼 완충재와 비닐이 재활용장에 작은 언덕을 이룬다.
위생적이고 간편한 일회용품은 코로나 시대의 필수 물품이 되었다. 발달한 과학기술과 풍부한 물자 덕분에 우리 교실은 부분적으로나마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교실 쓰레기봉투를 묶다 말고 역설적인 의문에 빠진다. 혹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물자를 풍부하게 만드는 행위가 도리어 인간을 위태롭게 하는 건 아닐까.
인간은 문명의 발전과 산업개발을 위해 끝없이 자원을 채취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가령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가정통신문을 나눠준다.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비닐은 편리하지만,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속도가 느려 잘 썩지 않는다. 석유는 비닐 외에도 플라스틱, 휘발유, 합성섬유 등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제품의 원료다. 우리가 석유를 시추하고, 정제하여 사용하면 할수록 생활은 편리해질지 몰라도 지구에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구는 점점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행성이 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빈번하고, 폭염에 시달리는가 하면, 지구가 에너지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태풍이 자주 발생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더 많은 탄소 배출물을 내뿜어, 기후위기를 부추긴다. 미국은 파리기후협약 같은 인류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마저 국익을 명목으로 탈퇴해버렸다. 우리가 찬란한 문명이라 부르는 것들은 파멸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비뚤어진 욕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다운 삶이라고 간주하는 일상의 양식이 이미 자연을 착취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재앙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죄책감
당장 교실만 해도 7월부터 에어컨을 켰다. 견뎌보려 했으나 날이 더우니 아이들은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마스크를 쓰고 6교시 수업을 하는 나도 코와 입술 주변에 땀이 차 가려웠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쾌적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은 만족의 기준선이 높다. 한번 찬바람 맛을 보면 약간 더운 상태를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레타 툰베리가 지적했듯, 기후 문제는 너무 어렵거나 규모가 커서 힘든 게 아니라 단지 희생을 각오하는 순간 생활이 너무 불편해져서 힘든 것이다.
나는 미미하지만 환경에 보탬이 되려 생색을 낸다. 교실에서 버려지는 비닐봉지 중 깨끗한 걸 모아두었다가 무거운 준비물이나, 토마토 모종 따위를 나눠줄 때 쓴다. 또 더위나 추위는 가급적 계절에 맞는 의상이나 자연적인 방법으로 이겨내려 한다. 일회성 소모품 구입을 줄이고 여러 번 쓸 수 있는 제품을 고른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적어도 반 아이들에게 방향성과 메시지는 전달할 수 있다는 마음에 계속 실천 중이다.
선진국이 누려온 행동 양식은 지속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환경운동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지구를 파괴하는 일에 가담하지는 말아야 한다. 코로나19의 치료제와 백신이 나온다고 해서 인류가 무사할 수 있을까? 살균 티슈로 교실 여기저기를 문지르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재앙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다. 탄소 배출량 7위 국가의 시민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