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나쁘지 않아
ⓒ쌤통
내 고향 울산은 중공업 시대의 총아이자, 현금이 강처럼 흐르는 도시였다. 성장과 발전은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IMF를 겪고, 산업구조가 변하며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 경제는 우상향이었다. 실제로 친구 중 몇몇은 부모님 사업을 물려받았으며, 대기업 현장직 노동자가 되는 건 평범해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건 사치가 되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 현재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과거보다 낮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못 살아서 그런 게 아니다. 일하더라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의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학교에서도 저성장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진로수업 준비 차 학생과 학부모의 진로희망을 알아본다. 학급 자체 조사이긴 하지만 결과로만 따지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진로교육 현황조사와 큰 차이점이 없다. 학생란은 교사와 의사, 운동선수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연예인, 유튜버도 간간이 눈에 띈다. 부모님은 ‘전문직’과 ‘공무원 계열’을 주로 적어내신다. 그런데 몇 년 전 당당히 ‘건물주’라고 적어낸 녀석이 있었다. 부모님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였고.
갓물주라는 인기웹툰이 있을 정도로 건물주는 부자의 상징이다. ⓒ네이버화면캡쳐
장난삼아 쓴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만만하고 태연한 표정이 뭔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주변 애들도 처음에는 푸하하 웃었지만, 어딘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로또 당첨이 장래희망일 수는 없지만 되면 좋은 것이고, 성공의 최종지표로서 건물주를 인정한다는 느낌이랄까.
"일만 해서 언제 돈 벌어요. 조물주 위에 갓물주."
정강이뼈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건물주는 ‘안 잘리는 직업’을 넘어서는 선택이다. 안정감으로는 부족하니 적극적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 아무나 건물주가 될 수는 없다. 건물을 사거나 지으려면 물려받은 돈이 있거나, 본인이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그러나 두 조건은 같은 말일 수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대학경험과 노동시장 지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학력이 좋고, 첫 일자리에서 받는 임금이 높다. 즉 잘 사는 부모가 잘 사는 자녀를 만든다. 자산을 물려주건, 좋은 학력과 고소득 일자리를 얻게끔 도와주건 말이다.
나는 건물주가 되겠다는 녀석의 재산이나 집안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추측하자면 부모님이 부유하거나 야심 있는 분이실 것 같다. 건물주가 부자가 되는데 왜 유리한지, 노동만으로 부자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가르쳐주고 건물주가 되겠다는 자식의 선택을 긍정한다는 건 꽤 여유가 있다는 증거니까. 영화 <기생충> 속 가난한 아빠는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하지만, 현실 속 부자 아빠는 “아들아, 나는 계획이 다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1대 99의 세상이 도래할까
경제학계의 슈퍼스타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재산소득이 생산소득을 초과한다는 공식을 치밀하게 증명한다. r(재산소득)>g(생산소득), 이 간단해 보이는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벽돌 두께의 820페이지를 할애한다. 흔히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 개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전체 경제의 파이가 커져도 개인이 가져가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재산이 많은 소수가 성장 과실을 상당 부분 가져가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재산소득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자산가와 고소득 노동자가 상위 10%를 차지한다고 보았다. 건물주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건 불로소득으로 상위 10%를 유지하며, 생활까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노동연구원의 ‘2015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 보고서를 보면 1965년에서 2015년 사이 한국의 소득집중도는 지속해서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비슷한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상위 10% 안에서도 1%의 소득 증가율이 나머지 5%, 9%를 추월하고 있다. 부의 초집중화다.
ⓒ연합뉴스
요즘 나는 아이들하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는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 반에는 상위 10%보다 그 아래 90%가 훨씬 많다. 내가 근무하는 강원도 삼척시가 서울 강남은 아니니 소득 상위 1%는커녕 10%도 흔치 않다. 이미 선진국형 성장모델에 올라탄 한국은 과거 20세기처럼 고속 성장을 할 수 없다.
내가 어릴 때 모 담임 선생님께서는 반에서 어떻게 대통령 꿈 가진 녀석이 안 나올 수 있느냐, 야망을 가져라, 하다못해 판검사라도 해보라며 타박하셨다. 그러나 저성장과 소득불균형의 시대에 이런 수업은 희망 고문에 가깝다. 나는 차라리 솔직해지려 한다. 너무 많이 벌려고 몸과 영혼을 갈아 넣지 말아라. 대박을 꿈꾸지 말고, 상류층 삶 쫓아간다고 통장 거덜 내지 말고 적당히 벌어 번 것보다 적게 쓰자. 일과 삶의 균형을 잡으면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자고 말한다.
ⓒ강원도교육청
이제 당신이 상위 10%가 아닌 한 가늘고 길게 사는 삶은 필수다. 그렇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득불균형과 부의 집중화는 어디까지나 상위 10%와 대비해 상대적으로 덜 번다는 의미일 뿐 절대적인 삶의 조건은 나아지고 있으니까. 오늘날보다 소득분배지수가 더 높았던 1970년대보다 오늘날 한국의 의료, 식량, 복지 인프라가 더 나은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나는 교사로서 골이 아프다. 당장 사회시간에 자유시장경제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계층상승이 가능하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교과서와 현실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멀어도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