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신종플루의 악몽, 혼자라서 더 위험했던 그때
최근 들른 학교에는 예방 수칙이 곳곳에 안내되어 있었다.
개학 연기 기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교에는 아이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긴급 교직원 회의를 마치고 재택근무 신청서를 썼다. 집에 가기 전 교실에 들러 일거리를 챙겼다. 책상 위에는 2월에 만들어둔 3월 1주 차 주간 학습 안내장이 놓여 있었다. 기한을 넘겨버린 안내장을 재활용함에 넣으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개학 연기를 실감했다.
11년 전의 악몽
11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그해 나는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를 앓았다. 3월에 첫 발령을 받은 나와 마찬가지로 신종플루도 봄 무렵 등장했다. 조금 센 감기쯤으로 여겼던 신종플루는 조기 소멸 예상을 뒤로하고 늦가을이 되어서야 절정으로 치달았다. 기침하던 아이들도 하나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실에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하자 신종플루를 우습게 보던 분위기도 점차 바뀌었다.
교실로 소독 약품과 일회용 마스크, 체온계가 배부되었다. 계기 교육 차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여러 번 알려주었지만 마스크 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등교와 동시에 아이들 체온을 측정하고 특이사항을 기록했는데, 체온계를 대고 있노라면 애들 침방울이 수시로 튀었다. 그래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스물세 살의 나는 건강을 과신했고, 일회용 마스크가 절대 방패라도 되는 양 굴었다.
우리 학년에서도 확진자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증상은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열에 근육통, 설사가 동반되었다. 신종플루는 전염력이 강한 질병이었기에 아픈 아이를 학교에 둘 수 없었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조퇴를 시키겠노라고 말했다. 당장 데리러 가겠다 또는 집에 보내주면 금방 가서 돌보겠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그런 집이 꽤 되었다. 부모가 너무 바쁘거나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신규 교사였던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어떤 학부모는 나를 달래기까지 하셨다. 선생님이 교직 생활 처음이시고, 아이를 키워본 적 없으니 매년 오는 독감에도 놀라신 것 같다며 고향 부모님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로 심각해 보이는 아이가 집에 가지 못할 때였다. 침상이 두 개뿐인 보건실은 이미 다른 의심 환자가 차지하고 있고,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러 올 형편이 안 되었다.
결국 담임인 내가 관내 출장을 내고 학교 근처 종합병원에 같이 갔다. 운전면허도 없었지만 걸어서 10분 거리에 큰 병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콜록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앉아 있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 온 경우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안쓰러움도 잠시, 나는 작은 원룸에서 펄펄 끓는 몸으로 떨어야 했다.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이다. 낯선 도시 강릉에서 나는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 부모님은 멀리 울산에 계셨고, 대학생인 여자 친구는 춘천에 있고, 옮길지도 모르는 마당에 동료 교사를 부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괜히 오지랖 부려서 병을 얻어 걸렸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도 이십대라 그랬는지 응급실에서 수액 맞고 타미플루 먹고 금방 나았다.
극심한 고통이 몸에 새긴 기억이 있다면 돌봄이 부재한 상황에서 아프면 서럽고 위험하다는 느낌이었다. 1인 가구는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고 편안하게 보일지 모르나, 위기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컸다.
힘들고 외로운 아이가 방치되지 않도록
개학 연기로 텅 빈 교실
11년이 흐른 지금,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아내와 함께 두 딸을 돌본다. 신종플루의 교훈 덕분인지 2월 초부터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위생 물품을 마련해 두었다. 마트 배송 서비스를 통해 냉장고도 주기적으로 채워 넣고 있다. 하수구 냄새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원룸은 아파트로 바뀌었고, 환기도 채광도 모두 괜찮다. 자발적 자가격리라고는 하지만 핑크퐁 동요가 흐르고 햇살이 쏟아지는 집의 풍경은 꽤나 평화롭다. 내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쓸쓸하고 괴로웠던 2009년의 강릉을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휴가에 가까운 외출금지가 열악한 주거환경과 경제 조건에서는 끔찍한 경험이 된다. 학교 회의에 참석했더니 앞으로는 의심 증상만 있어도 등교 중지가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예전처럼 열나고 기침 나는데 억지로 학교에 나온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힘들게 사는 집에서 아픈 아이가 나오기 쉽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인다. 쓸쓸하게 지내는 아이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