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교실 14] 3월, 이제 그리움을 끝낼 시간
3월 2일 아침. 새로 옮긴 학교의 낯선 교실에 처음 보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교사 의자에 앉아있는 이방인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절반의 호기심과 절반의 경계심. 자기들 덩치의 2배가 넘는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책상 위로 바쁘게 지나다녔다. 선생은 애써 미소 짓고 있지만 벌써부터 작년 친구들이 그리웠다. 불과 70일 전 겨울방학식 때 눈물바람으로 헤어진 기억이 생생했다. 정주고 마음 줘서 일 년 키워놨더니 생이별했다. 7년째 반복되는 새 학기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초면이니 소개를 했다. 낯가림은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지 않아 목소리가 떨렸다. 학급을 쭉 훑어보는데 눈에 아는 얼굴이 안 들어왔다. 그나마 착하게 생긴 단발머리 여자애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목받는다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딴청을 피웠다. '이제 어디에다 눈을 둬야 하나', 불편했다. 이럴 때면 내성적인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22명의 4학년들이 칠판 앞에 선 사람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학생들은 선생님 뒤통수만 보고도 배운다고 했다. 제자를 앞에 두고 당황스러워하는 교사는 훌륭하지 않다.
'이제 내 새끼다. 얼른 정 붙이고 살아야지.'
서로를 알아가는 활동으로 하루를 채웠다. 이름과 얼굴을 수 차례 확인했다. 이름은 지난주에 미리 명렬표를 받아서 외웠었는데 막상 부르려니 입에서 막혔다. 수업시간에 몇 번 실수하고 애들한테서 웃음보가 터져야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사이끼리 만나 친해지는 데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4교시만 하고 하교시켰다. 어린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긴장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장인어른과 처음 식사를 하고 잠시 소변보러 나온 화장실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아이들이 버리고 간 필기도구를 주워 모은다. 이것도 추억이라고 못 버리겠다.
캐비닛과 서랍장을 열었다. 2월에 미쳐 다 정리하지 못한 짐들이 산더미다. 우선 잡동사니부터 치워야 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수납함을 살폈다. 볼펜, 유성펜, 지우개, 형광펜 온갖 필기도구들이 모여있다. 아이들이 버리고 간 필기구를 까마귀처럼 주워 모은 흔적이었다. 잉크가 말라버리거나 못쓰게 된 도구들도 꽤 있었다. 안쪽에 있는 내용물을 살펴보니 '4보람'이라 적혀있었다. 2009년에 주은 물건이다. 버려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수년째 갖고 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감상적인 상태일 때 잠깐 들여다보려고 그랬다.
그 짧은 순간들은 일 년 중 한시간도 되지 않는다. 고작 그 이유로 폐물들을 수집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한시간이 나머지 364일 23시간을 버티게 한다. 추억은 만질 수 있는 물리적 대상으로 남겨두는 편이다. 머리 속에 들어가면 기억이 왜곡되거나 잊히게 된다. 프린팅이 벗겨진 몽당연필만 해도 그렇다. 손가락으로 쥐어보고 종이에 끄적이다 보면 까먹고 있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맞아, 서연이는 맨날 노란색 푸 연필만 썼는데.'
옆에 보니 보라 연필도 있고, 혜강이 연필도 있다. 오래된 수납함에 2010년과 2013년의 추억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납함 바닥 칸에서는 카네이션 무더기가 발견되었다. 색종이나 조화로 만든 꽃은 아직도 생생한데 생화는 바짝 말라있었다. 잎에 손을 대니 바스락거리며 가루가 되었다. 꽃이랑 같이 붙어있는 편지에는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수줍은 글씨가 적혀있다. 행복했다.
카네이션이 꼭 5월에만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한참이나 과거의 제자들이 남기고 간 물품들을 뒤적였다. 전보발령을 받고 쓸쓸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PC 메신저에 쪽지 표시가 등장했다. 오후에 직원회의가 열린다는 알림이었다. 얼른 미뤄뒀던 청소와 정리를 진행했다. 씩씩하게 빗자루질을 하는데 신났다. 깨끗하게 쓸고 닦은 이 교실에서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탄생할지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색하기만 한 2016년 제자들도 머지않아 소중한 기억들 속으로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울적하거나 고독한 미래의 나를 위로하리라. 3월, 이제는 그리움을 끝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