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당신께
강원도에 살면서 좋은 건 굳이 바다와 산을 보려고 큰 맘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소중한 휴가를 쓰고 애써 계획을 짜 바다를 보러 올 때 약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면서도 삭막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크리스티나 벨레모가 쓰고 마리아 모야가 그린 『하늘을 팝니다』는 그런 도시인들에게 ‘하늘을 파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무대인 토로네는 153층이 넘는 빌딩으로 빼곡한 대도시다. 사계절 교통지옥에다 회색빛 건축물로 뒤덮인 토로네 시민들은 달력에 글자로 적어줘야 비로소 봄을 실감한다. 여러분이 상인이라면 이 삭막한 도시에서 무엇을 팔겠는가?
제목을 보고 슬슬 궁금증이 생길 무렵 대머리에 키가 작고 배가 볼록 나온 한 남자가 도시 중앙 광장에 등장한다. 그가 파는 품목은 ‘손수건’ 단 하나. 상인은 광장 한가운데서 온갖 날씨의 하늘을 그려놓은 손수건을 목청 높여 홍보한다. 모바일 쇼핑이 대세인 시대에 조선시대 보부상도 아니고 손수건을 육성으로 판매하는 남자라니, 몹시 걱정되지만 결국은 상인이 옳았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서류 뭉치 따위를 들여다보기 바쁜 토로네 시민들에게 하늘은 신기한 물건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진귀한 하늘을 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선다. 갖가지 손수건을 펼칠 때마다 봄바람이 불고, 여름날 아름다운 짙은 파란색 하늘이 나타나고,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사이 상인 아저씨는 가방에 돈이 넘쳐나 곧 터질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급하게 다니던 한 사람이 미끄러져 뒤로 자빠진다. 넘어지며 얼떨결에 바라본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저 위를 보세요. 진짜 하늘이 있어요!” 남자가 소리친 후에야 사람들은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중앙 광장에는 사라진 손수건 상인 대신 벌렁 뒤집어진 남자의 동상이 세워진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산골 도계의 준엄한 산자락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토로네 사람들이 억만금을 내고 사갈 만한 풍경이 시야 닿는 곳마다 깔려있었다. 자연에 둘러싸여 지낸다고 은근히 자부하던 터였지만 유심히 풍광을 바라보고 즐긴 건 오랜만이었다. 내 안에도 쓸데없이 분주한 토로네 사람이 숨어있었다.
우리가 눈을 닫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름다움은 이미 거기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을 팝니다』는 책 읽는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게 하는 특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힐끔 곁눈질하며 읽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