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 이 학자는 우리 식탁이 '19금 밥상'이라 말한다
동화 '강아지똥'의 저자인 권정생 선생님은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는데 '김산하의 야생학교'가 딱 그랬다. 저자는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장류 학자이고 인도네시아의 정글에서 다년간 진짜 '정글의 법칙'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이 진짜 정글의 법칙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글의 법칙>이 이름과 달리 생물다양성이 가장 우수한 천혜의 자연을 시시껄렁한 게임과 가짜 서바이벌의 장으로 전락시키는 극단적인 '반(反) 정글' 프로그램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방송을 즐겨봤던 터라 리얼리티 오락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럼 진짜 정글의 법칙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정글이 지구의 허파이자 생명의 진원지로서 보전과 예찬의 대상이므로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진짜 정글의 법칙은 오랜 시간 지켜온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놔두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글의 전반에 깔린 '인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라는 신념이 매우 단단해서 읽다 보면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은 저자의 동생인 김한민씨가 그렸다. ⓒ갈라파고스
더욱이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정글처럼 일반인들에게 특수하게 여겨지는 지역뿐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으로 야생 이야기를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김산하 씨는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실천으로 옮기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도입부에서부터 야생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한다. 야생학교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건물이 아니다. 야생학교는 도시인인 우리가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상 전체를 교실 삼아, 자연을 운동장 삼아 스스로 학생이 되고 선생님이 되는 나만의 학교다.
이 낯선 개념이 당황스러웠지만 세상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많이 밀려난 자연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글쓴이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보물 같은 관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산하 씨는 우리 식탁이 '19금 밥상'이라고 칭한다. 성인들만 먹어야 하는 선정적인 반찬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없는 잔인한 밥상이라 그렇다고 한다.
자식들 꽃길만 걷게 하려고 어떻게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한국 부모들이, 이상하게도 먹을 때만 되면 살벌해진다. 아들딸 정서에 좋다고 <니모를 찾아서> 류의 생명친화적인 영화를 골라주는 이들이 물고기들이 몸을 돌릴 수조차 없이 꽉 찬 횟집 수족관을 보고 싱글벙글한다. 그것도 모자라 싱싱한 게 최고라며 산 새우를 그 자리에서 껍질 벗겨 초장에 찍어 먹는다. 토막이 되어 참기름을 더듬는 산낙지와 끓는 물을 피해 두부 속으로 도망치도록 해서 만든다는 추두부는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이므로 비판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기력이 달리면 낙지볶음을 수시로 찾는 터라 '탕탕이 산낙지'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뜨끔했다. 꿈틀거리는 상태로 올라오는 전복 해물 뚝배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를 지극히 평범한 취향과 입맛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해산물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음 챕터로 옮겨가서도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계속되었다.
혹시 '노는 땅'이라는 표현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부동산 상담을 받거나, 공터 같은 곳을 지나치다 보면 쉽게 듣게 되는 표현이 '노는 땅'인데 인공물이 없는 땅을 가리켜 흔히들 논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영어로 직역하면 'playing ground'이지만 이건 놀이터를 의미하므로 '논다'에 담긴 약간의 부정적 색채를 담아내지 못한다.
초목이 바람에 바부끼고, 돌 위에 잠자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공간을 논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노는 땅에서 동물들은 놀기도 하고, 짝짓기도 하고, 잠도 잘 것이다. 인간이 지은 구조물이 없다고 해서 땅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새롭지 않은가? 김산하 씨는 도시인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굉장히 논리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로 파헤친다. 사소한 언어습관부터 '포켓몬 고'로 대변되는 증강현실 열풍 속 소외 현실에 이르기까지 45개의 주제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이 약간 달리 보이게 된다.
솔직히 저자처럼 야생학교 모범생이 될 용기는 없다. 그래도 가끔씩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흉내는 내볼 계획이다. 일관되게 반反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非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훨씬 낫다는 저자의 말을 빈약한 친환경인 생활의 변명거리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