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하는 ‘똥 이야기’
“선생님 똥 마려워요. 화장실 갔다 올게요.” 부끄러워 똥의 쌍디귿자도 꺼내지 못하던 아이들이 변했다. <마법사 똥맨>을 읽은 이후부터였다. 올해부터 4학년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교사 재량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독서 단원이 신설되었다. 우리 반은 책 속 주인공인 똥수와 귀남이에게 푹 빠져 3주를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고른 책으로 국어 수업을 하다니, 돌이켜보면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기 전,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는 날은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앞문도 뒷문도 꼭꼭 닫고 혹여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국어 수업이라고 하면 일단 <읽기 4-1>을 펼쳐서, 9일이면 출석번호 9번이 지문을 한 페이지씩 읽고 난 뒤 내용 파악 질문에 답 쓰는 게 당연시되던 제7차 교육과정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도서를 활용하라고 권하면서도, 교과서의 지문과 문제를 기본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수준과 문항의 완성도는 높았다. 목표가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국어의 다양한 개념과 기능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문학 단원을 지도할 때면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박해성
교과서는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 작품을 통째로 실을 수 없다. 보통 국어 1단원과 마지막 단원은 문학 영역으로 되어 있는데, 앞뒤 맥락 없이 토막 난 이야기가 지문으로 나오는 것은 흔하고, 상대적으로 글이 적은 시 역시 제목이나 시어가 수정되어 실리는 경우가 있었다. 문학 또한 예술의 한 갈래임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감상하는 게 옳은데, 국어 시간은 늘 ‘장님 코끼리 만지는’ 느낌이었다.
독서 수업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
수업 시간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해당 단원의 목표를 충실히 달성할 수 있는 책을 골라 수업을 재구성하면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양질의 작품으로 독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면 번번이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교수나 전공자들이 만든 교과서를 쓰지 않고 굳이 다른 책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느냐?”라는 딴지 때문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교사의 전문성을 불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교과연구회와 현장 교사들이 꾸준히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수업 사례를 중심으로 힘을 보탰다. 교사는 정식으로 교육학을 배웠으며,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다수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노하우를 갖춘 교육 전문가다. 최근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도 교사의 전문성 존중과 열린 교재관에 근거하고 있다.
문학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반 아이들을 가장 잘 알고 수업 경험이 풍부한 담임교사가 최적의 교재를 선정해 활용할 수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자유로운 독서 단원 도입은 학습 공동체의 풍경을 바꿨다.
“학교에서 똥 싸는 주제로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한 건 처음이에요.” <마법사 똥맨> 토론 과정에서 아이들은 변비로 얼굴이 노랗게 되었던 흑역사, 대변보려고 조퇴한 사연, 똥 참다가 숨 막힐 뻔한 사연을 쏟아내었다. 감정이입하여 책을 따라가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레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고 성격을 분석했다. 교과서 활동이 책 한 권에 녹아 있었다.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이다. 마침 7월부터는 도서구입비를 소득공제까지 해준다. 책 읽기 참 좋은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작년에 한 학기 한 권 읽기 단원(독서단원)이 도입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올해는 6학년을 맡아 매 학기 10차시씩 연극 단원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원 없이 읽고, 연기하고, 토론하며 책으로 놉니다. 책과 벗하며 평생을 지낼 수 있는 아이들을 키워낼 수만 있다면 초등학교의 역할의 칠할은 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