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생명체들이 펼치는 영토 전쟁
『갯벌 전쟁』장선환 글·그림 ⓒ모래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지만 동해에는 갯벌이 없다. 내가 근무하는 삼척은 동쪽 바다를 끼고 있어, 갯벌에서 흙을 만져본 아이가 거의 없다. 가끔 먼 친척 집에 갔다가 갯벌 체험을 한 녀석들이 사담을 풀면 갯벌이 바지락과 농게들의 파라다이스처럼 그려졌다. 갯벌은 어떤 곳일까?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갯벌 전쟁』은 순간 이동 장치처럼 독자를 갯벌 한복판에 갖다 놓는 그림책이다. 일단 판형이 무척 커서(27×30센티미터) 양손에 쥐고 읽으면 화면이 시야에 가득 찬다. 첫 장을 펼쳐 보자. 누군가가 버리고 간 페트병 옆으로 갯강구 한 마리가 열심히 내달린다. 갯강구 정찰병은 흰무늬 갯벌 소속으로, 회색무늬 갯벌 군대와 전투를 앞두고 상대 진영을 살피러 가는 중이다. 아니, 갯벌 집단끼리 싸운다고? 그렇다. 이 책은 점점 사라지는 갯벌 영토를 두고 펼쳐지는 대전쟁 서사시다. 물론 전쟁의 실마리는 인간이 제공하지만.
흰무늬 갯벌 진영은 일종의 연합군인데 칠게 대장군을 중심으로 모두들 똘똘 뭉쳐있다. 고둥 장군은 적들이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지도록 길을 복잡하게 내고, 세스랑게 장군은 집짓기 특기를 발휘해 방어벽을 두텁게 올린다. 전투 준비 과정만 살펴봐도 갯벌 가족들의 특징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베테랑 지휘관 칠게 대장군은 각 부대를 방문하며 사기를 북돋는다.
갯지렁이, 쏙, 방게, 꼬막, 짱뚱어 등 흰무늬 갯벌 군대는 서로 종족이 다르지만 같은 뜻을 굳게 공유한다. 모두가 흰무늬 갯벌을 사랑하며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만 한다는 뜻을 말이다. 중반부 이후 낙지가 연합군에 합류할 때는 눈물까지 찔끔 날 거 같다. 낙지는 평소 작은 생물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지만 대의를 위해 기꺼이 참전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을 돕기 위해 등장한 유령 군대를 볼 때의 감동이랄까.
ⓒ모래알
작가는 전쟁의 두근거림과 긴박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 만화처럼 칸을 분할해 표현력을 극대화한다. 영화 「300」의 장면을 볼 때처럼 체액 튀는 전장의 소음이 들리는가 하면, 갑자기 줌아웃하여 드넓은 갯벌을 소리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전략이 칠게 대장군 집게발 치는 정도다.
특히 대문 접지 방식으로 보여주는 가로 1미터 길이의 갯벌 풍경은 숨이 턱 막힌다. 우리 반 꼬맹이들은 갓 입대한 신병처럼 그림책에 빠져들었다. 갯벌 전선의 상황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칠게 대장군께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