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교실25] 지나친 규칙은 곤란해!
“선생님 안녕하세요.”
8시 51분, 산희의 지각은 늘 당당하다. 해맑은 웃음과 단정한 걸음걸이는 야단칠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아침에 늦게 오는 습관만 제외하면 수업 집중 잘하고, 숙제 꼬박꼬박 해오는 산희는 참 예쁜 아이였다. 몇 차례 지각으로 가벼운 꾸중을 주긴 하였지만 학교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학급 규칙을 확실히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사회 3단원을 배울 때였다. 학급의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방안을 결정하는 수업이었는데 쉬는 시간 소음이 고민거리로 상정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다. 투표를 통해 최종 선정된 방법이 바로 ‘엄격한 학급규칙의 적용’이었다. 지금껏 학급 규칙은 단 세 가지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내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규칙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법치 정신 투철한 어린이들은 배고픈 것도 잊고 규칙을 만들었다. 공정한 법만이 학급을 건강하고 질서 있게 만든다는 나름의 기치도 있었다. 점심시간을 20분이나 깎아 먹고 나서야 새로운 규칙이 완성되었다. 물론 지각에 관한 규칙도 포함되었다.
‘8시 35분을 넘어 교실에 들어오면 벌 청소를 합니다.’
학급은 순식간에 감시사회가 되었다. 교무실에서 짧은 회의가 있어 내려갔다 오면 규칙 위반 사례가 쌓여있었다. 산희는 매일 벌 청소였다. 그녀가 등교 시각을 8시 41분, 8시 39분까지 당겨봤지만 칼날 같은 규칙은 어림없었다. 급식 줄 안 지킨 형민, 음악 공책 안 가져온 지예, 복도에서 뛴 영균이…. 청소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부작용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 보고 의심했다. 자기를 신고한 친구를 보복성으로 갚아주니, 크고 작은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날은 더운데 스트레스 지수는 치솟았다. 학생들이 직접 결정한 사안이라 담임이 일방적으로 규칙을 뜯어고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산희가 또 지각했다. 학급대표 권석이가 손가락을 뻗어 지적하려는 찰나 산희가 항변했다.
“억울해. 1층에서 3학년 애가 과학실 어디 있냐고 묻길래 데려다주고 왔어. 3학년 2반 선생님이 칭찬도 해주셨어. 사실 지난번에도 우리 가게 물건 보러 가는 날이라고 새벽에 집에 왔단 말이야. 사정이 있어서 못 지키는 규칙을 무조건 따라야하니!”
평소 다정하고 얌전한 산희가 강하게 나오자, 권석이가 머뭇거렸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너도나도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냈다.
규칙의 수호신 격인 학급대표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열흘 전만 해도 같은 편이었던 이들이 성내고 있으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예전의 규칙으로 돌아가되 쉬는 시간은 책 읽는 사람을 위해 각별히 배려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약법삼장(約法三章). 한나라 고조 유방은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법부터 고쳤다. 백성들의 삶을 옥죄고 힘들게 하는 진나라 가혹한 법을 간단히 세 가지 법으로 완화시킨 것이다. 지각대장 산희의 외침이 친구들을 움직인 건 숨 쉴 틈을 찾던 학우들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