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그교16] 일하다 가족과 헤어진 남자, 이유가 기막혀
일하다 가족과 헤어진 남자, 이유가 기막혀
짬그교16] 글 엘린 레빈, 그림 카디르 넬슨 <헨리의 자유 상자>
"선생님이 초등학교 다닐 때 복도에서 축구했다고 뺨을 맞은 적이 있어요."
히익, 아이들이 놀라서 어깨를 움찔거렸다. 옛날에는 선생님들이 때렸나는 질문에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얘기했을 뿐이었다. 1995년,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1995년이라는 말에 애들은 또다시 히익! 2008년에 태어난 그들에게 90년대는 화석이 되어버린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뺨 때리면 엄마가 화나서 전화하지 않아요?"
더 때려 달라고 '사랑의 매'를 전달하는 어머니도 계셨다고 하니 수민이는 "말도 안 돼!"라며 비명을 질렀다. 겨우 20년 남짓 흘렀는데 교육의 모습은 꽤 많이 변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부조리에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구나 싶다가도 냉정하게 따져보면 교육환경이나 의식 수준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심정으로 선생님의 학창 시절에 귀 기울이던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있었다. 지각 벌칙으로 20분 동안 기마자세를 했다는 반인권적 사연이 무색해지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건 남자의 탈출 이야기 <헨리의 자유 상자>였다.
이 아이가 헨리다 ⓒ뜨인돌 어린이
헨리 브라운은 자기 나이를 모르는 노예다. 노예는 생일이 없다. 헨리 가족은 친절한 주인님이 사는 저택에서 일했다. 주인은 헨리 등에 채찍을 후려치거나, 수갑을 채우는 악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헨리의 엄마는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을 알고 아들 헨리에게 쓸쓸한 말을 건넨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보이니? 저 이파리들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될 거야. 어린 노예들이 가족과 헤어지게 되는 것처럼."
어느 날 아침, 몸이 몹시 아픈 주인님이 헨리와 엄마를 부른다. 침대에 누워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주인님을 보고 헨리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운이 좋은 몇몇 노예들은 주인님 마음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헨리도 그중 한 명이 되길 바랬다.
"너는 좋은 일꾼이야, 헨리. 너를 내 아들에게 주겠어. 반드시 내 아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헨리를 보고 성욱이가 사람을 선물처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한 존재라서 누구라도 함부로 가지거나 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나를 낳아주시고 사랑하는 부모님조차 여러분들을 완전히 자기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 엄마, 아빠도 안 된다는 말에 류은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럼 헨리는요?"
"헨리는 노예라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요. 노예 주인들만 사람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태어나서 한 번도 노예를 만난 적 없는 초등학생들은 어리둥절해했다. 150년 전의 헨리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가족과 헤어졌지만, 우리 반 학생들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헨리가 주인이 먹다 남은 과일과 거친 빵을 먹어야 했다면 한국의 아이들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양질의 급식을 먹었다. 급식받을 때도 반찬이나 국을 얼마만큼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지금의 아이들이 노예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잘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헨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뜨인돌 어린이
헨리는 새 주인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헨리와 피부색이 같은 흑인 공장장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작업을 감시했는데 어쩌다 직원이 실수하면 심하게 매질했다. 담뱃잎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헨리는 외로운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몇 년이 흐른 후 헨리는 주인님 심부름으로 장을 보러 나온 낸시와 사랑에 빠진다. 비록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를 수 없는 노예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두 사람은 양쪽 주인의 허락을 받아 결혼에 성공했고 아들 셋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달콤한 인생은 오래가지 않는다. 주인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잃게 되면서 낸시는 불안해한다.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든 이유 때문이었다.
"낸시가 왜 불안해할까요?"
"주인이 돈 잃고 열 받아서 때릴까 봐요."
그러나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손찌검보다 더 무서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가 담뱃잎 공장에 일하러 간 사이 주인은 낸시와 아들들을 팔아버린다. 처자식이 손발을 묶인 채 마차에 실려가는 순간에도 헨리는 담뱃잎을 엮는다. 동료에게 소식을 듣고 분노와 당혹감으로 몸을 떠는 헨리에게 돌아오는 건 공장장의 호통과 으름장이었다. 헨리의 심장은 갈래갈래 찢어지는 듯했다.
"아빠! 아빠!"
허망하게 가족을 떠나보낸 헨리는 더 이상 노래 부르지 않았으며, 어두운 밤이면 혼자 눈물을 훔쳤다. 가족과 헤어져본 경험이 있는 K가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헨리의 모습에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겨우 200년도 안 된 실화예요. 그것도 작년까지 흑인이 대통령이었던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죠."
"지금도 노예가 있어요?"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누구든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없다고 했다. 나영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며 안심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노예는 아니지만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고 사는 사람이 숱하다고 알려주었다. 그게 누구냐는 물음에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월급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나 현장체험학습 가서 본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차별을 당한다고 예를 들어주었다.
"그럼 노예랑 비슷한 거네요."
노예는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이 흔하게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생님 말이면 그게 법인 줄 알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10살짜리 꼬마들. 이 순진하고 고운 아이들은 약자였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존재는 쉽게 범죄와 학대의 대상이 된다. 눈 앞에 앉은 아이들과 그림책 속 헨리의 모습이 묘하게 겹쳤다.
우편물로 위장한 헨리의 탈출 상자 ⓒ뜨인돌 어린이
그럼 이야기로 돌아와서, 가족을 잃은 헨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헨리는 운송용 나무 상자를 골똘히 바라본다. 갈색 직육면체 모양의 상자에서 영감을 얻은 헨리는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스미스 박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노예가 없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세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아치 거리에 있는 윌리엄 존슨에게 가는 우편물로 위장한 헨리는 좁디좁은 나무 상자에 몸을 구겨 넣는다. 27시간, 560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행. 몸을 펼 수도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작은 상자 안에서 헨리는 오직 자유를 꿈꾸며 버틴다. 마침내 헨리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너희가 만약 헨리였다면 상자 안에 들어갔겠니?"
"네! 무조건 갈 거예요."
헨리의 성공담을 목격한 아이들은 너도나도 상자에 들어갈 거라고 외쳤다. 다한이는 벌써부터 무릎을 끌어안으며 상체 웅크리는 연습을 했다. 헨리가 자유를 얻기 위해 상자에 들어갔다면 다한이는 무엇을 위해 상자를 찾게 될까? 아니면 상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벌써 되어버린 걸까?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요즘 세대 아이들을 보며 세상 좋아졌다고 한다. 노예 헨리가 살았던 19세기 미국과 비교해 보면 21세기 한국은 분명 발전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학교까지 무료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식사를 제공받는다. 이제 굶거나 헐벗은 이들은 없지만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온전하게 누리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극단적으로 가난하고 힘겨웠던 지난날과 비교하여 현재의 문제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 시대가 언제였건, 살고 있는 곳이 어디건 간에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괴로움과 굴레가 있다. 10살 아이가 품은 근심이 있다면 그의 삶에서 근심은 결코 가볍지 않다.
1849년 3월 30일에 있었던 헨리 박스 브라운의 모험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건 여전히 우리 삶에서 극복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헨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비록 나무 상자에 몸을 구겨 넣을지언정 인생은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