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문자 오가는 온라인수업... 난 전화기를 들었다
온라인 수업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6월 8일로 등교 개학이 예정되어 있지만, 온라인 수업 영상 제작을 병행한다. 격일, 격주 운영 시 온라인 수업 콘텐츠가 필요하고, 만에 하나 학교에 확진자가 발생 시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은 교사들 할 일 없이 논다는 세간의 평과 달리 쉽지 않다. 15분짜리 영상을 제작·편집하는 데 두 시간가량 걸린다.
방역과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나는 5학년 개학이 심히 걱정된다. 담임에게 주어진 방역물품은 마스크와 소독제 등이 담긴 보건용 상자 하나다. 등교 시 학교 건물에 들어오기 전 발열 체크를 하지만 무증상 감염자까지 걸러낼 수 없다. 이 상황에서 22명의 아이들과 한정된 공간에서 장시간 수업하며 단체급식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확실한 백신과 치료약이 부재한 상황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가며 적응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온라인 수업은 당분간 오프라인 교실과 더불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개학 이후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는 변화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긍정적인 변화를 꼽자면 건강이다. 아이들은 집단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써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교사 입장에서는 의외일 수 있는데 목이 아프지 않다. 나는 과거 매주 목요일쯤 되면 턱 아래가 부풀어 오른 듯 쓰라렸다. 동료 선생님처럼 성대 수술받고, 마이크 생활할 정도는 아니지만 도라지차 따위를 수시로 마셨다. 아이들 하교하면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교사에게 목소리는 수업 밑천이다. 물론 현재도 수업 영상 녹음을 하기에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왁자지껄한 교실에서의 목과 비교 불가다. 그러나 목소리는 부차적인 영역이고, 고령화가 진행되어 50대 이상 기저질환 보유 교사가 많은 학교에서 원격 수업은 신규 감염을 줄여준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코로나19 치명률이 높아진다. 등교 개학 이후 학생뿐 아니라, 고령 교직원 감염에 따른 문제가 부각되리라 예상한다.
화상대화보다 채팅과 문자 선호하는 아이들
수업과 학급 운영 면에서는 곤란함이 있다. 학생의 미디어 리터러시, 즉 문해력 부족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5학년쯤 되면 글은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문맥 파악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가상 공간에서는 말보다 글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채팅과 댓글이 하루에 수백 개씩 날아다닌다. 나 역시 과제 점검과 질의응답을 일대일 채팅과 문자 메시지로 진행했다. 얼핏 보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곧 허점이 드러났다.
가정에서 관리가 잘 되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학습에 익숙한 아이들은 수업을 쉽게 따라왔다. 구글링하면서 추가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수업 틈틈이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다. 일반 수업이었다면 수업 흐름을 고려해서 하지 않았을 질문도 일대일 상담 형식으로 여럿 들어왔다. 채팅이 말보다 더 편한 아이들이었다.
반면, 몇몇 아이들은 잠수를 타면서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물론 교실에는 얼마간의 비율로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모둠에서 친구와 상호작용하고 교사가 밀착 마크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오프라인 수업의 최대 장점인 상호교류와 다각적인 지원은 학생 간 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온라인은 학생 간 상호교류가 힘들다.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같은 공간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교류와는 수준이 다르다.
문해력 격차 현상은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가속화된다. 가정 형편에 따라 공교육이 전부인 아이들과 사교육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나뉘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이 코로나19로 인한 차선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뼈아픈 부분이다. 등교 개학을 한다고 해도 방역 지침으로 다양한 수업 방식을 적용하는데 제약이 따를 것이다. 중간 수준 이하 학생의 학습 결손이 우려된다.
채팅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오해를 풀자면, 쌍방향 실시간 수업이 최고라는 믿음이다. 언론에서 온라인수업 기사를 낼 때 항상 줌(ZOOM) 프로그램을 이용한 출석 체크 장면 따위만 내보내니 실시간 쌍방향 대면 수업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겠느냐고들 한다.
그러나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5학년은 얼굴과 집 일부를 공개해야 하는 실시간 화상대화보다 채팅과 문자를 선호한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적 영역이 있다.
"안녕히 계세요"는 "여보세요"보다 밝다
마지막은 학급 구성원 간 관계 형성 문제다. 나는 아직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초등학생은 담임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중등과 달리 초등학교는 선생님이 교실로 출근해서 수업, 쉬는 시간, 점심시간, 퇴근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을 함께한다. 어린이의 발달 과정상 학습과 생활지도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나온 근무 형태다.
초등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관계 맺는 3월을 '황금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올해는 그 황금달이 사라졌다.
나는 차가운 관계의 벽을 실감했다. 특히 수업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어른인 나도 하루에 6교시 동영상 수업을 소화하려면 지친다. 그런데 수요일을 제외하고 월화목금 6교시 행진이니 12살 배기가 버텨내겠는가.
끝도 없는 수업 동영상에, 쌓여만 가는 과제. 안 그래도 과부하 걸려 있는데 홍수처럼 쏟아지는 선생님의 메시지.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의 피로가 느껴졌다. 학생이 교사와 친하면 학습 의욕이라도 솟겠는데 온라인에서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물며 같이 급식도 못 먹어본 사이 아닌가.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게는 아직 전화라는 아날로그 소통 방식이 남아 있었다. 일대일 채팅과 문자 메시지는 종전대로 운영하되 상담을 겸한 전화 통화를 확대했다. 다짜고짜 전화하면 수업 영상을 시청하는 데 방해가 되고, 귀찮아할 수 있으니 학생의 질문을 기다렸다. 보통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2교시 숙제 무슨어떻게하는건지모르겠어요."
일대일 채팅으로 질문이 들어온다.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안 맞다. 채팅으로 지도가 어려운 케이스다. 휴대전화를 든다. 착신음이 한참 울린다. 화장실에 갔나? 끊으려는 찰나, 신호가 멈춘다.
"여보세요."
축 처진 목소리. 용건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꼬리가 저 멀리 도망가 있다. 담임이 불쑥 전화를 걸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눈치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몸은 좀 어떠냐, 답답하지는 않냐 안부를 묻는다. '네, 네'하고 대답은 하는데 바짝 긴장해 있다.
"국어 교과서 115쪽 한 번 펴 볼래? 1번이 어렵다고 했지?"
우리는 같은 책을 펴 놓고 옆에 앉은 것처럼 문장을 짚어 나간다. 말투에 묻어 있는 아리송함, 망설임, 해결의 기쁨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메신저로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답신을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속도가 난다. 10분 같은 5분이 지나고 종료 버튼을 누른다. 아이의 마지막 "안녕히 계세요"는 첫인사 "여보세요"보다 밝다.
부디 학교가 안녕하길
짬짬이 통화는 효과가 좋았다. 나는 할 말만 하고 바로 끊지 않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한 마디라도 더 붙였다. 아이들은 작년과 다름없이 학원에 다니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별것 아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아이들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통화 이후 과제 응답률과 출석률이 높아졌다. 학생도 담임과 통화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비로소 같은 반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전화 통화와 격려는 힘이 있었다.
두 달 전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사비로 마이크와 휴대폰 거치대를 구입하고 휴대폰 요금제를 무한으로 바꿨다. 벌써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교사인 나에게 뉴노멀의 중심에는 온라인 수업이 있다. 교사는 수업하는 사람이니까.
온라인 수업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나약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한한 범용성과 적응력에 있다지 않는가. 다만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의 병행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방역 지침까지 지켜가며 학생 관리를 해야 하므로 교사의 탈진과 번아웃이 염려된다. 부디 학교가 안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