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엘리트가 쓴 자기 계발서를 끝까지 읽은 이유
슈퍼 엘리트가 쓴 자기 계발서를 끝까지 읽은 이유
우쥔 지음, 이지수 옮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너에게>
누구나 금수저의 삶을 부러워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모른다. 금수저 부모가 금수저 자녀를 만든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양육과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실감하기 어렵다. 만일 금수저의 자녀 교육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더군다나 금수저가 알고 보니 흙수저 출신이라면 그 비결이 무척 궁금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너에게>는 저명한 자연언어 처리 전문가인 '우쥔'이 두 딸에게 보낸 편지를 추려 만든 자기 계발서이다. 세부 분류로 따지면 '성공학/경력관리'에 해당한다. 나는 자기 계발서가 전체 독서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미만이라 도서 선정에 빡빡한 편인데, 이번 책은 거부감이 덜하다.
사실 자녀에게 편지 형태로 조언하는 자기 계발서는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아도 왠지 흐뭇하다. 생판 모르는 남이 던지는 꼰대 짓과는 결이 다른 내 새끼 사랑이 문맥에서 느껴진다.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이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 ⓒ오월구일
저자 우쥔의 스펙은 최상급이다. 중국 칭화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글 초창기 핵심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한중일 검색 알고리즘 등을 설계했으며, 중국 최대 IT기업이자 세계 최대 게임회사인 텐센트에서 검색 부문을 총괄하는 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구글을 거쳐 2014년부터는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듣기만 해도 독자 기를 팍 죽이는 스펙이지만 성공학 책은 원래 이런 배경이 있어야 읽는 맛이 난다. 심지어 자수성가했지 않은가. 두 딸에게 보내는 아빠의 조언은 다정하고 구체적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어느 날 멍신(둘째 딸)이 물었다.
"언니는 좋은 대학(MIT)에 갔으니 나중에 좋은 직장에도 들어가고 행복하게 잘 살겠죠?"
나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멍신이 다시 물었다.
"평생 노력해야 한다면 왜 꼭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죠? 학교를 그만두고 창업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92쪽)
꽤 난감한 질문이다. 한국 학생의 공통 고민인 "왜 공부를 해야 하죠?"와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딸에게 훌륭한 질문을 했다고 칭찬을 던진 후 말문을 연다. 교육은 빈부와 상관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가 된다. 쉽게 말해서 교육은 운명을 바꾼다.
뉴턴은 무상 교육을 통해 중등 교육을 마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유럽의 변방국이었던 프로이센은 훔볼트의 대중 교육 체계 덕택에 수십 년 만에 강대국으로 거듭난다. 우쥔 본인도 중국의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생이 생기자 우쥔은 부모와 떨어져 난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인간승리를 이룩한다. 고도성장기의 중국과 정보통신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성취다.
저자는 과거의 자료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의 교육 성공 사례를 풍성하게 가져온다. 미국의 KIPP(아는 것이 힘 프로그램),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의 변화와 꿈을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창업에 성공한 이들의 배경을 분석한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의 공동 창업자)은 대학에서 본과를 마치고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가 중간에 그만두었을 뿐이란다. (중략)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야후의 공동 창업자)도 마찬가지로 박사학위를 받지는 못했지만 교육 수준은 꽤 높은 편이란다. (중략)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었고,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찾은 다음에 학교를 그만두었단다. (99-100쪽)"
딸이 반격도 못할 만큼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이다. 저자는 자녀가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 논문 한 편도 써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학식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 본인의 교육의 세례를 받았으니 자녀에게도 배움의 기적을 물려주고픈 탓이리라. 그러면서도 딸이 주눅 들까 봐 대안을 덧붙인다.
"꼭 일류 대학을 가지 못하더라도 좋은 영향력을 가진 친구를 옆에 둬야 한다, 공부의 목적은 사회에 온전히 설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101쪽)"
넘사벽 스펙의 저자 우쥔 ⓒ오월구일
딸이 숨 막혀 죽으면 어떡하냐고? 그런데 그만큼 지원을 확실하게 해 주니까.
책에는 총 마흔 편의 편지가 실려 있다. 하나 같이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묵직한 글이다. 다루는 주제도 폭넓다. 무려 '인생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 '돈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다. 살면서 만나게 될 모든 가시밭길을 코스 별로 예습하는 듯한 치밀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이 집 딸들이 진짜로 행복할까, 모든 걸 쫀쫀하게 꿰고 있는 아빠 때문에 갑갑해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러다가도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여러 면모들이 우려를 줄어들게 만든다. 우쥔은 자녀가 지덕체 + 자산관리 등 어떤 영역에서의 소홀함도 없이 균형 잡힌 사람이 되길 바란다. 대치동의 일부 극성 부모처럼 자녀에게 공부만 하라고 닦아세우지 않는다.
온 가족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데, 세계 정상급 연주자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까지 날아간다. 둘째 딸 멍신은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레슨을 받고 훗날 콩쿠르에서 수상하여 링컨센터에서 연주할 기회를 가진다.
운동도 한다. 가족이 테니스와 골프를 함께 즐기고, 다재다능한 둘째 딸은 대학 골프 대표팀까지 선발된다. 저자 본인도 코치를 두고 운동을 즐긴다. 온 가족이 자본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여가와 취미를 만끽한다.
저자는 책의 첫 번째 조언으로 긍정적인 태도로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균형 잡힌 삶의 중요성이 책의 전반에 걸쳐 거듭해서 언급된다. 이성적인 회의론자가 되어라, 소인배를 멀리하라. 최선의 적은 최고다... 딸들에게는 스승 같은 아버지가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부담스러움은 짧고 자랑스러움은 클 것 같다.
부모의 지원은 든든한 뒷배가 된다. ⓒUNSPLASH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는 점들
성공학 책의 태생적 한계일 수는 있겠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저자 본인이 흙수저 출신의 입지적인 인물이라고는 하나 결국 이 책은 자녀에게 어떤 가르침이나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나는 독자이자 두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때때로 위화감을 느꼈다.
첫째 딸 멍화는 MIT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는데, 그 어떤 대목에서도 학비나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고민은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과 전공의 선택, 인턴에서 번 돈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공과대학 이사직이기도 한 저자는 MIT 학과장을 쉽게 만나고 지인들을 총동원하여 자녀 대학 투어를 시킨다.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전폭적이고도 실용적으로 자녀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무척 부지런하고 유능한 사람이며, 능력주의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을 지지한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미국 대학의 소수 인종 입학 우대 정책을 철폐해야 한다고 외칠 정도이다. 이미 상류층 엘리트로 살고 있는 우쥔 가족에게는 소수 인종 입학 우대 정책이 불공정할지 모르나, 주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유색 인종 학생들에게 소수 인종 입학 우대 정책은 기회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은 듯했다. 민주주의에서 다양성 확보가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쥔은 본인의 삶에서 건져 올린 팁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독자에게 퍼준다. 자녀에게만 비밀스럽게 전수해줄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만인과 나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우쥔과 같은 아버지를 둘 수는 없다. 그러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쥔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책을 읽고 지인들에게 소개했더니 절반 정도는 성공학 도서가 희망고문 같은 거라며 외면했다.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노오오오력'만으로는 도저히 삶의 개선을 이끌어 내기 힘든 세상인 것도 일면 맞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살아야 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밖에 없다.
우쥔의 조언은 고전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다지고 행동 원칙을 점검해 보기에는 적절하다. 부러워서 배가 아프고, 내 애들한테 우쥔만큼 못 해줘서 미안해지지만 나의 옹졸함과는 별개로 저자의 선의와 진심에 반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