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내어 그림책 읽는 교실4] '검은 손' 차별 금지에 걸린 시간, 70년
마거릿 H. 메이슨 글, 플로이드 쿠퍼 그림 <할아버지 손>
"조지프야, 이 할애비 손 좀 보렴."
처음과 똑같은 대사. 하얀 앞니를 환하게 드러낸 할아버지는 조지프를 무릎에 앉히고 피아노를 친다. 그는 어린 손자에게 묻는다. 내가 왕년에 건반 두드리면서 봄날 제비들처럼 지지배배 봄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아냐고. "진짜요?" "그럼, 그렇고 말고." 껄껄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명나는 피아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학교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진희가 신기해했다. 어떻게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가르쳐줄 수 있지?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조지프야, 이 할애비 손 좀 보렴"
뜻밖의 상황에 아이들 눈동자가 커진다. 흰 빵 공장 사장들이, 사람들은 검은손으로 만진 흰 빵을 싫어한다고 흐름장을 놓았다는 사연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피부색으로 다른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한국 어린이들은 이런 전개가 낯설었나 보다. 전혀 상관관계를 못 찾겠다는 표정이다. 고학년 책을 벌써 읽고 있는 원석이가 미국은 옛날에 인종차별이 심했다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켰다는 지식도 덤으로 전해주었다.
울산 고향집 얘기를 해줬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셋방을 놓았었는데, 이주 노동자들이 몇몇 들어와 살았다.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7만 원을 못 내서, 방세가 밀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 한국 노동자보다 더 오래 일하고, 적은 급료를 받았다. 2004년에 유행한 개그였던 '블랑카'의 "사장님 나빠요"의 현실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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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있던 승주는 이주 노동자가 돈을 못 벌어 불쌍하다고 했다. 또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비주류의 삶은 주목받지 못한다. 신경써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다.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무관심은 비단 이주 노동자만의 문제일까? 일상에서 차이로 인한 차별은 흔하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성적 소수자... 시간이 부족하여 '차이'에 기반한 '차별'의 예시를 모두 다룰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회적 고민거리를 짚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조지프에게 말을 건네는 할아버지 마음이 이랬으려나?
환하게 미소짓는 손자를 응원하며 할아버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삶은 행복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책 읽어주던 내 손을 들여다 본다.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생각한다. 잠깐 사색에 빠진 나를 아이들이 쳐다본다. 앉아있는 자세도, 눈빛도 제각각이다. 그래 맞다. 적어도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