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화를 만나다] 사춘기를 지나는 우리의 자세 -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
전 이 영화가 정말이지, 무척 좋았습니다.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제가 3번이나 보았으니까요.
어떤 부분에서는 깨달음으로 끄덕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을 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시되어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 중, 제 마음에 가장 남아있는 장면 하나를 TET의 눈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컨트롤센터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빙봉을 만납니다.
빙봉과 함께 기억열차를 타기 위해 상상의 마을을 지나게 되고,
빙봉과 라일리의 추억이 담긴 로켓이 버려지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빙봉은 무척 상심합니다.
기쁨이는 애가 탑니다.
빨리 기억열차를 타러 가야하거든요.
주저앉아있는 빙봉을 일으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요.
하지만 빙봉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우리네 학교에서, 가정에서 비슷한 장면은 매일매일 재연됩니다.
선생님들은, 엄마와 아빠들은 우울해하거나 슬퍼하거나 화가 난 아이들을 만나면기쁨이처럼 행동합니다.
어떻게든 그 감정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원래(?) 해야 하는 어떤 일에 최대한 빠르게 다시 집중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들 말하지요.
“그래. 알겠어. 그런데 지금은 공부해야지?”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만 그런거 아니야.” 등등.
하지만, 영화 속 빙봉처럼 우리의 이런 말에 아이들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때, 슬픔이가 다가옵니다.
슬픔이는 기쁨이와 조금 다르네요.
그저 곁에 앉아서 손잡아주고, 안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적극적 경청’ 하지요.
적극적 경청은 TET의 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공감적 경청, 반영적 경청이라고도 하지요.
이 적극적 경청의 핵심은 상대방의 ‘감정’을 보듬어 안는 것입니다.
“너 혼자만 지적받는 것 같아서 억울했구나.”
“무척 슬프고 두려웠겠네...”
혼란과 슬픔, 좌절을 겪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인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을 때,
그 순간, 상대방이 느꼈을 법한 그 마음과 감정이
고스란히 바깥쪽으로 안전하게 드러나도록 길을 터주는 것.
그게 적극적 경청이라고 생각해요.
슬픔이의 적극적 경청과 따뜻하게 맞잡은 손으로
빙봉은 다시 일어납니다.
기쁨이가 그렇게 온갖 수단을 쓰면서 일으키려 해도 일어나지 않던 빙봉이
스스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서서 다시 자신의 길로 돌아오지요.
적극적 경청은 경청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합니다.
억지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치유된 마음은 스스로 방법을 찾고, 원래의(?) 길로 되돌아옵니다.
이것과 비슷한 장면은 영화의 끝부분에도 한 번 더 나와요.
혼자 미네소타로 가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라일리를 엄마와 아빠가 꼭 끌어안고, 적극적 경청하지요.
품에 안긴 라일리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하~아~”
그리고 살며시 미소짓습니다.
라일리는 이 순간, 무척 행복해보입니다.
행복은 단순히 항상 ‘즐겁고 기쁘고 명랑한’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가 아무리 어리다 해도, 언제나 즐겁고 기쁘고 명랑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는’ 대신,
행복을 ‘강요’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라일리의 엄마처럼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교사와 부모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아이가 잘되길,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지요.
그러나 그 마음이 빨리 목적을 달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되는 순간,
속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마냥 덮어두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을 ‘강요’하게 되지요.
이 영화는 ‘사춘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아이,
조금씩 세계가 성장해가는 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사춘기는 아이가 어렵다거나 아이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아니라,
아이의 곁을 지키는 부모와 교사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아닐까 하고요.
성장과 함께 자연스레 찾아오는 감정의 격변을
적극적 경청으로 보듬는 것,
그것이 바로 교사와 부모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방법’을 제시해주기 보다,
아이의 곁에서 ‘손잡아’ 주고,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교사와 부모가 있을 때,
아이의 사춘기도 여유있게 지나가지 않을까요?
이상, 한창 라일리처럼 변해가는 6학년 아이들의 담임교사,
이은진의 영화 감상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