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보다]#3. 준비물을 배달하러 왔다면 뒤돌아서 돌아가세요...???
외국 학교 정문에 붙어있다는플랭카드 사진.
많은 선생님들의 타임라인에 공유되고, 수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널리널리 퍼졌다.
"만약 아이들이 깜빡한 점심, 책, 숙제, 신발 등의 물건을
배달하러 왔다면 뒤돌아서 돌아가세요.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부재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결과에 책임을 갖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진 속 플랭카드에 적힌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결과에 책임을 갖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려는 순간,
한가지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학교는, 그리고 우리 선생님은
내 아이가 숙제, 준비물 등을 깜빡하고 왔을 때
아이를 ‘성장’시키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돕고’ 있을까?
혹, 아이를 ‘비난’하고 부모를 ‘탓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들도 잘 안다.
준비물이나 숙제 같은 것을 ‘꼭’ 배달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한번쯤 내버려두고 스스로 불편을 경험하고 깨닫게 하고 싶다고,
엄마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아이의 습관이 바뀌고 변화하는 과정과 시간을
얼마나 견디고 이해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썩 신뢰하지 않는다.
“한 반에 30명씩 되고,
애들이 각각 한번씩만 실수하고 잘못해도 30번인데,
처음엔 차분하게 설명하고 이해해주시겠지만,
선생님도 사람인데 나중에는 화날 거 아니야.
근데 그 순간에 잘못한 애가 우리 애면 어떻게 해.
애가 다 뒤집어쓰면 안되잖아. 그러니까...”
흔히, 교사들은
부모교육의 일환으로‘자녀의 성취와 자신을 일치시키지 말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말로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과제 분리’를 말하지만,
실제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장면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잘 챙겨야’한다는 믿음이 드러난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애 준비물도 안챙기고...”
“애한테 관심이 없나, 알림장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네.”
“그 엄마 일해?”
“애 하고 다니는 걸 보면 그집 엄마가 보여.”
"엄마들이 이런 것도 안챙겨주고 뭐하나 모르겠어."
교사들끼리 있을 때, 종종 듣게 되는 문장들이다.
(설마 나만 들어본 것은 아니겠지?...)
이 말들은 ‘진심으로’ 엄마들을 비난하려고 하거나
엄마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습관이 잘 안잡히는 아이에 대한 답답함을 저 표현을 빌려 토로하셨을 뿐임을 잘 안다.
하지만, 언어가 생각의 반영임을 이해한다면,
저 말이 퍼져나가서 형성한 '학부모-엄마'들의 인식 역시,
단순히 엄마들의 '극성맞음'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미 엄마의 역할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사회적 믿음'은
저런 '플랭카드' 따위로 바뀌기 어렵다.
아무리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아이와 엄마가 분리된 존재이며,
또 아이의 성취가 엄마의 책임이 아니라 말한들,
사회적, 경험적으로 엄마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저런 플랭카드를 건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엄마들에게 ‘과제분리할 것’을 요구하기 이전에,
학교와 교사가 아이의 성장과 책임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교사로서의 나 자신은 아이가 준비물이나 물건을 놓고 왔을 때
아이의 성장과 책임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혹, 습관을 ‘잡는다’라는 이유로 ‘야단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더.
성장은 오랜 시간의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다그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지난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다스림이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