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실]1. 차별없고 평화로운 교실에 대한 합의의 시간
학년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꼭 하게 되는 교실살이의 장면 중 하나는 '교실 약속 만들기'일테다.
매년 하지만, 매년 조금씩 활동의 모습이 달라지고, 또 내가 강조하는 면이 달라지게 된다.
나의 교직 초창기에는 '왕칼' 답게, 빡빡하고도 엄격한 규칙을 던져줬고,
급격하게 인권에 대해 자각한 뒤엔 규칙은 없고 '권리선언'으로 대신했다가,
요즈음에는 둘 사이의 중간 즈음 정도에 위치해있달까?...
여전히 기본 원칙은 '인권'이지만, 그 인권을 실제로 구현해내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엇이 수용되고 수용되지 않는지를 이야기나누며
행동의 기준을 함께 합의하고자 한다.
이 날의 활동 역시, 그러한 과정 안에 있었다.
참 고맙(?)게도, 6학년 1학기 사회에는 '일상생활과 민주주의'라는 단원이 있고,
이 단원에서는 민주적 가치와 원리를 내면화하여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한다.
그래서 사회와 창체를 엮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교실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그리고 평화가 깨진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찾아서 모아보았다.
그렇게 찾아서 적은 것을 함께 보면서
무엇이 우리의 인권과 평화를 침해하는지를 정리했다.
소외와 배제,
외모나 성별 등 정체성에 대한 놀림이나 비하,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강요나 억압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를 존중합니다" 같이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나 말을 찾아보라는 게 어린이들에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예전 학생들이 썼던 좋은 문장을 예시로 1~2개 들어주면,
어린이들은 금세 흡수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너의 아이디어가 좋아"
"등교한 친구에게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말해주기"
"친구가 말하면 무시하지 않기"
"이렇게 해볼까?"
"친구의 시험점수를 말하고 다니지 않기" 등,
경험이 녹아있는, 우리만의 행동 기준들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덧붙여보았다.
"여기엔 주로, 여러분이 할 말과 행동만 들어있는 것 같아요.
1~2개만 더 추가해봅시다.
다만, 이번에 추가하는 1~2개는 모두 선생님인 제가 해야 할 말이나 행동으로 찾아봅시다.
저 역시, 우리 교실의 구성원이니까요."
어린이들은 모든 활동 중에서 이 마지막 부분을 제일 어려워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라는 어린이들의 말이 마음에 쿡쿡 와서 박힌다.
과제가 많지 않았으면, 점심시간에 노래를 틀어주었으면, 쉬는 시간을 많이 주었으면 같은
소소하고 사소해보이는 요구들도 있었고,
자신들의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좋겠다는
내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도 있었다.
간혹, 어린이들이 말하는 이런 요구들을 불편해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신 듯 하다.
특히, 쉬는 시간 많이, 체육 많이, 점심시간 노래 틀어주세요 같은 요구를 보면서
'역시...' 라며 혀를 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이런 요구를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휴식에 대한 권리'와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같은게 깔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사의 역할은, 어린이들의 이러한 요구를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쳐내는 것이 아니라,
바탕에 깔린 욕구와 권리를 해석하고, 더 나은 말로 바꾸어 표현해주는 게 아닐까?...
우리반 어린이들도 그랬다.
쉬는 시간 많이... 라는 요구를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권리' 라는 말로 번역해서 들려주자,
"맞아요!" 라며 표정이 확 펴진다.
정제된 언어로, 규칙으로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날것의 말과 행동을 가이드라인 삼아,
올 한해를 잘 보내보려고 한다.
교실 한 켠에 붙어서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고,
순간순간, 기준으로서 작동할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될거고, 그러면 다시 새로이 생각을 모아가려고 한다.
올 한해도,
차별없이 평화로우며, 인권이 존중되는 그런 교실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