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친화적인 교실 꾸리기 - 아홉번째 이야기: 규칙이라는 이름의 불편함
새 학기가 시작한지 어느덧 2달.
교실은 이제 어느정도 합의된 질서와 합의된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겁니다.
2달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규칙'을 다시 들고 나오는 건,
어쩌면 시기적으로 무척 늦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교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2달이 지난 지금은
학기 초에 함께 만들고 세웠던 '규칙'이 슬금슬금 무너지는 시점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오히려 이 시기야말로,
우리가 '규칙'을 다시 생각해볼만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이맘때 즈음의 교사 커뮤니티를 열어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아래와 같은 하소연을 하십니다.
고민을 토로하시는 선생님들의 글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수많은 댓글로 지친 선생님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처음이라고 생각하시고,
다시 규칙을 만들고 엄격하게 적용해보세요."
정말, 규칙을 '새로' 만들고, '엄격하게' 적용하면 교실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문제는 규칙이 '없어서', 혹은 '엄격하지 않아서' 일까요?
전, 문제의 원인은 어쩌면,
교사와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규칙' 그 자체의 '이미지' 에 있다고 생각해요.
즉, '규칙'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 이랄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문제 1. 규칙은 누가 만들고, 누가 승인하나?
대부분의 경우, 규칙은 외부에서 주어집니다.
교실에서는 교사에 의해 학급규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는 학교장과 교사에 의해 학칙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에서는 부모에 의해.
물론, 요즈음에는 '함께 만드는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학기 초에 아이들과 함께 규칙을 만들고 있지만,
그렇게 만든 규칙이 최종 승인되는 것은
아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사에 의할 때가 많습니다.
교사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학교가 윤활하게 굴러가기 위해 만들어지는 규칙은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워요.
그렇기에 규칙은 아이들이 실제 당면한 삶의 문제가 담겨 있고,
아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아이들에 의해 승인되어야 해요.
문제 2. 의심없이 '지켜야만 하는' 규칙
규칙이라고 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는다면 규칙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렇기에 규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규칙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단순히 우리가 '합의'한 것이니까,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니까
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가기 어려워요.
그러니, 아이들의 입장에서
"규칙이니까 지켜야지!" 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요?
규칙을 지켜야함을 강조하기 전에,
이 규칙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과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해요.
문제 3. 금지, 금지, 또 금지로 가득찬 규칙
규칙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규칙이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에요.
아침부터 집에 갈때까지, 하루종일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 가득한 교실.
어떤 느낌인가요?
손발을 다 꽁꽁 묶어두고 숨도 못쉬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규칙은 '금지의 목록'이 되어서는 안돼요.
규칙은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람직한 교실의 삶을 가꿔가기 위해 필요해요.
문제 4. 처벌과 보상에 의해 힘을 유지하는 규칙
~을 하면 스티커 하나,
~을 하지 않으면 반성문 쓰기. (혹은 명심보감 쓰기. 도대체 명심보감은 무슨 잘못??)
교사가 규칙을 만들던,
아이들과 함께 규칙을 만들던,
우리는 보통 규칙을 만든다고 할 때 떠올리게 되는 것은 '보상과 처벌' 기준이에요.
특히 그 중에서도 '처벌' 규정.
아이들과 규칙을 만들다보면 참 놀라운 장면을 만나게 돼요.
"숙제 안하면 운동장 10바퀴!"
"준비물 안가져오면 앉았다 일어났다 100번!"
아이들은 교사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처벌 규정을 만들고 싶어해요.
교사들도 처벌 규정이 없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해하지요.
"만약 아이들이 지키지 않으면 교실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지?"
"혼나지 않는데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려고 할까?"
라는 의문이 수시로 떠올라요.
원래 규칙은 '다같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약속인데,
규칙 안에 보상과 처벌이 들어오는 순간,
규칙은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통제와 감시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려요.
따라서 규칙은 처벌과 통제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돼요.
최근 3~4년 사이 학교의 '규칙'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어요.
교사가 일방적으로 규칙을 정해서 알려주고 지키기를 강요하는 것도,
행동을 단순히 규제하고 금지하는 식의 규칙은 많이 사라졌어요.
3월, 신학기가 되면,
학교 차원, 반 차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협의'하여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교육과정에 의해 확보되어 있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그동안 '규칙'이라는 이름 아래 경험했던 것이 습관처럼,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규칙이라고 했을 때 자연스레 통제와 금지, 처벌이 떠오르곤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규칙'이라는 낱말보다
'약속', '울타리', '가이드라인' 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추세에요.
특히, 버츄프로젝트와 PDC가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규칙'의 부작용이 많이 누그러들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요.
그림에서처럼 학교에서의 규칙(가이드라인, 울타리 등등, 어떤 표현을 쓰던지 간에)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거든요.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목적을 가진 규칙은
학생 개개인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학생의 삶을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지켜야 할 '의무'의 목록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공동체를 말하기 전,
학생 개개인에 초점을 맞출 수는 없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의무의 목록인 규칙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까 해요. ^^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검색, 확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