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그림책을 만나다]Ep3. 평화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3
다섯 번째 질문: “폭력은 왜 생길까요?”
폭력은 정말, 왜 생길까요?
폭력 가해자의 나쁜 심성과 잘못된 인성 탓일까요?
얼핏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때린 놈이 나쁘다’고요.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폭력의 다양한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을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폭력은 힘의 불균형 때문에 생깁니다.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지요.
하지만 진짜 문제가 되는 지점은
구조와 시스템, 문화 속에 내재된 힘의 불균형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힘의 불균형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힘의 불균형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이를 남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폭력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뉴스 등에서 종종 접합니다.
백화점에서 손님이 판매원을 대상으로 폭언과 횡포를 부리는 경우,
군대에서 사령관이 부하 장병을 함부로 하는 경우,
회사에서 사장이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경우 등등,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는 ‘갑질’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갑질', 좀 당해보셨을 겁니다.
특히, 신규일수록, 경력이 적을수록 더 많이 당해보셨을 겁니다.
저도 가만히 되짚어보면 새록새록 기억이 솟아납니다.
교장의 퇴임식날, 한복 입고 음식 날라봤던 일,
교감의 대학원 숙제 대신 해주던 일,
교장 자녀의 청첩장에 풀칠하던 일 등등...
일명 ‘갑질’을 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어떨까요?
의외로 무척 다정하고 친절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옵니다.
저에게 위와 같은 행동을 했던 교장과 교감에 대한 평가도 그랬습니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야." 라고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친구로 만나거나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나는 그 사람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친절한데,
왜 이런 특정 장면에서는 ‘갑질’의 대명사가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 힘의 불균형이 숨어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친절하고 다정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 그리고 상대가 힘의 절대적 약자일 때,
폭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그저, 당연히 받아도 되는 ‘서비스’, 혹은 당연히 해도 괜찮은 행위,
때로는 나보다 하급자 혹은 어린 사람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여섯 번째 질문: “폭력이 문화라고요?”
폭력은 현상이 아닙니다.
폭력은 왜곡된 형태의 관계맺기의 방식입니다.
폭력에 기반한 관계맺기의 방식은 ‘위계’를 따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누가 더 힘과 권력을 가져야하는가를 따지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의 관계맺기에 익숙한 사람은
사람을 처음 만나면 나이를 따지거나, 학력을 따지거나, 계급을 따집니다.
그리고 관계를 저울질하지요.
그렇게 힘과 권력에 비춰서 위계가 결정되고 나면,
억압과 강요, 복종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힘이 더 센 사람이 약자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약자는 그에 복종하는 방식이지요.
폭력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습니다.
힘에 익숙해지면, 힘에 의한 방식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특정한 관계 속에서의 약자가
모든 관계 속에서 항상 약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보다 더 힘과 권력이 없는 누군가에게 또다른 방식으로 억압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폭력의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지요.
이런 장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 학교폭력입니다.
평화의 문제, 그리고 폭력의 문제는 결국,
나를 둘러싼 타인, 나를 둘러싼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평화의 본질은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만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누가 더 위인가 아래인가를 따져서
일방적으로 흐르는 예의와 존경을 묻지 않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덧붙이는 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학교폭력예방교육이라는 말보다는
‘평화감수성 교육’이라는 표현을 더욱 선호합니다.
폭력은 단순히 수비적으로 ‘예방’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적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평화감수성을 기르고 확산시켜가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말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이라는 표현으로 자꾸만 ‘폭력’이라는 낱말에 노출시키기보다는
‘평화’를 더욱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게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