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활동, 뭘하지?]말하기보다 듣기를! '그림자 발표'
교사가 수업 중 겪게되는 ‘악몽같은’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요?
저에게는 모든 아이들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숨죽이고 있는 그 순간이
상상하기도 싫은, 제일 끔찍한 상황입니다.
마냥 발표를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해주길 기다리기엔 너무나 갑갑하거든요.
저학년때는 번쩍번쩍 올라가던 손이 왜 고학년으로 갈수록 아래로 향하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정답’에 대한 강박,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더불어, 청소년기의 ‘예민한 감수성’, ‘주변 시선에 대한 의식’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발표방법을 쓰면 어떨까요?
‘그림자 발표’를 소개합니다. ^^
#1. 그림자 발표?
일반적으로 발표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전체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림자 발표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왜 그림자 발표냐고요?
몰라요. 제가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니까요. ^^;;
단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춰준다는 의미에서 '그림자'라고 부를 따름입니다.
#2. 선행작업, 친구 이야기 듣기!
그림자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지요.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짝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모둠 안에서 의견을 교환하기,
좀더 크게는 학급 전체가 다 함께 의견을 교환합니다.
제가 주로 선호하는 방식은 학급 전체가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릅니다.
저는 이 방식을 다양한 의견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합니다.
그리고 5분 정도나마, 아이들의 '움직임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다님에 따라 발생하는 소란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 방식을 쓰기엔 어렵겠지요.
선생님들의 성향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 ^^
#3. 그림자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림자 발표를 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덜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리고 훨씬 더 쉽게 발표를 시작하지요.
친구와 대화하면서 들었던 친구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꼭 ‘누구’의 의견이었는지는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라는 의견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라던지,
“제가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림자 발표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합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습니다.
이렇게 듣고 기억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한가지 조건을 덧붙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친구의 생각 사이에서 발견한 ‘차이점’을 말해달라고 부탁하지요.
차이점이 없다고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차이라도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저는 @@라고 표현했는데, 친구는 $$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작은 낱말의 차이도 생각을 표현할 때는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더 발전한 수준은 친구의 의견을 듣고 ‘내 생각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난 뒤,
처음 자신의 생각와 나중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하는 단계입니다.
이 수준까지 오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4. 왜 하필 그림자 발표를?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여러 명의 친구들과 수업 주제에 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한 후에는
반드시 ‘그림자 발표’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들과 만나서 ‘딴’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냥 자신이 이야기만 속사포처럼 쏟아낼 수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요.
배움의 공동체를 주창한 사토 마나부 교수는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라는 책에서
무작정 발언을 이끌어내기만 하는 ‘거짓주체성의 신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왁자지껄하고 괴성이 터져 나오는 교실,
활발하게 '저요, 저요' 하며 손은 올라가지만 발언경쟁만 과열되어 있는 교실..."
좋은 배움은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작은 차이를 느끼면서 서로 맞추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수업을 통해 다양한 발견과 의견이 서로 교류하도록 조직하고,
만남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림자 발표는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 ‘쏟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와 다른 친구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배움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움은 들음에서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