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그림책을 만나다]Ep2. 평화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2
네 번째 질문: “평화의 반대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거의 99%의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전쟁이요!!" 라고요.
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평화의 반대말로 전쟁이 나옵니다.
하지만, 평화의 반대말을 '전쟁'으로만 여기면,
우리는 평화의 진면목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평화의 반대말로 적합한 낱말은 폭력입니다.
사람들은 폭력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대부분 누군가가 누군가를 ‘패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아마 신체적 폭행,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등, ‘학교폭력’의 갖가지 유형이 함께 떠오를겁니다.
어찌되었든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장면이 반사적으로 떠오릅니다.
즉, ‘직접적 폭력’입니다.
이런 종류의 폭력은 위험하고, 즉각적으로 눈에 띕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직접적 폭력에 대해서는 경계심도 갖고,
또 예방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 폭력만을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폭력의 개념을 좀더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폭력의 두 번째 유형은 ‘구조적 폭력’입니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시스템이 그러하기 때문에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입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상황입니다.
취업을 위한 면접의 장면입니다.
어라? 왠지 이상합니다.이 장면이 '폭력'이라니요?
긴장되고 숨막히는 느낌은 들지언정, '폭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상상해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취업을 위해 앉아있는 피면접자이고,
여러분 앞에 앉아있는 면접관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그때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어... 김땡땡씨? 오늘 화장이 좀 잘 된거 같은데, 앞으로 매번 그러고 다닐수 있어요?
여자가, 회사에서 꽃처럼 좀 꾸미고 그래야하지 않겠어요?"
"저기, 이땡땡씨. 여자 맞나? 면접보러 오는데, 바지를 입고 오는건 너무 무성의하지 않아요?"
"박떙땡씨. 자소서에 보니까, 본인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던데,
그런데 왜 대학은 지방대를 나왔나 모르겠네?"
자, 이제는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여전히, 폭력적이라고 하기 어려우신가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참고로, 위의 멘트들은 제가 만들어낸 문장이 아닙니다.
실제 면접을 본 취업대기자들이 자신들의 경험했던 면접질문을 모아놓은 것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일명 ‘압박면접’의 장면,이런 장면은 절대 평화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소극적 평화와 직접적 폭력의 관점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구조적 폭력'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을’이 됩니다.
그리고 면접관은 더 나은 인재를 뽑겠다는 명목으로 면접 시에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지요.
이는 절대, 면접관 한 명의 인성이나 잘못의 문제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취업난, 그리고 취업을 원하는 사람과 그들을 심사하는 면접관이라는 구조 속에서는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폭력의 세 번째 유형은 바로 ‘문화적 폭력’입니다.
한 사회가 쌓아온 문화적 배경이 알게 모르게 폭력적인-차별적이고 부당한-장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문화적 폭력의 장면은 명절 때입니다.
보통의 경우, 명절날 여성들은 바쁘게 음식을 장만합니다.
반면 남성들은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지요.
최근 인기를 끈 웹툰, <며느라기>에는 이런 장면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문화적 폭력은 사실, 평소에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내재하여, 그것이 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쉽지 않지요.
‘원래 그랬으니까’ 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그랬다고 해서, 전통이라고 해서,
그게 당연한 것이며, 평화로운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닙니다.
물론 전쟁 역시 평화의 반대 개념이지만, 전쟁만이 평화의 반대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합니다.
전쟁은 그 중에서 직접적 폭력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형태이지요.
따라서 평화의 반대말은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을 포함한 폭력 전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들,
즉, 인권 침해야말로, 평화의 가장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권과 가장 친한 낱말은 평화이며, 폭력은 평화를 해치는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화는 단순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갈등없이 사이좋은 관계'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모든 존재가 자신의 모습과 잠재된 능력을 온전히 인정받고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능동적이며 적극적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형용사가 아닌, '동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