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3. 도현이가 나에게 준 느낌표!!!
도현이가 나에게 준 느낌표!!!
23학년 복식학급.
학기 초 단 명이었던 짝꿍이 전학을 가 버리고 난 후,
2학년 도현이의 짝꿍은 선생님인 제가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수업시간
3학년 친구들의 선생님이자 2학년 친구 도현이의 선생님이자 짝꿍
모두 제가 해야 하는 역할들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듯 했지만 역할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단식학급 시절 담임이라는 역할 하나만으로도 벅차고 바쁠 때를 생각하면,
여기 이 곳에서의 역할은 말 그대로 멀티플레이어가 습관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 과학, 영어가 교과시간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도현(2학년 학생)이에게 집중해 줄 수 있는 시간.
2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래 친구가 없는 도현이와 단 둘이서
동네탐험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건물도 몇 개 되지 않고 살고 있는 집들도 몇 채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도현이는 동네에 대한 호기심이 참 많았습니다.
(사실 학기 초 짝꿍이 전학을 가고 도현이가 혼자 많이 외로워 하지 않을까,
기죽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사실 다문화학생이기도 한 도현이는 똑순이 짝꿍의 상대적인 영향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자존감도 많이 낮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도현이는 교내 친구들이
놀람을 토해낼 정도로 잘 적응해 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의 전학을 비교대상이 사라진 것으로 작용되어 자기표현에 더 적극적인 학생으로의 변화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동네는 아주 작은 시골입니다.
하지만 도현이는 작은 들풀조차도 놓치지 않으려 자기가 관찰한 것들을 공책에
빼곡하게 적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옆 읍사무소, 농협, 정미소, 등의 큰 건물도
또 비닐하우스 속 채소와 들녘 곡식들에게 주는 관심으로 무척 설레고 신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늘 ‘또래 친구 한 명 없는 이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해 주어야 하지..
교과지도, 교우생활, 교실생활... 모둠도 없고 짝활동도 없는데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마음 한 가득이었습니다.
혹시 이 아이가 무엇이라도 놓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날 도현이와 동네탐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리듬!!!” 도현이도 나도 우리는 각각 혼자입니다.
하지만 도현이는 혼자서도 자신의 페이스에 리듬까지 타가면서
어른인 나보다도 더 멋들어지게 상황에 대한 즐김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아니 종종 낯선 상황, 혼자인 상황들을 경험합니다.
그 짧은 듯 깊은 경험 속에서 어떤 심경을 느끼시나요?
네 저는 공감을 할 수는 있으나 상황은 절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혼자 남아있는 이 아이를 나의 잣대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떠할 것이라고 나의 시선, 내 경험의 기준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도현이는 나에게 경험의 과정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음에 좋아하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음에 마냥 설레어 하고 행복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지금까지 내 기준에, 내 욕심에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느껴왔던 무게, 책임감이라는 이름도 부끄러워지면서 입가에 무언가 모를 흐뭇한 미소가 나에게 새로운 여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꼭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라는 생각보다 그 아이가 경험하는 과정들을 그저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이 날은 도현이가 나에게 깨달음을 준 선생님이 되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