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 Ep3. 가드 올려!
“1라운드, 파이트!”
‘땡!’
레퍼리의 기합 소리와 함께 청량한 공이 울렸다. 1라운드 시작이다.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긴장감 때문에 숨이 가쁘다. 천천히 잽을 날리다 옆으로 각을 틀었다. 깊숙이 들어가서 바디나 훅을 치고 싶었다. 그때 ‘퍽’하는 느낌과 함께 내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상대의 카운터가 내 얼굴을 파고든 것이다. 멀리서 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가드 올려!”
“가드 올리고, 가드 올리고!”
미트 연습 중이다. 2라운드 막바지. 관장님은 미트로 나에게 잽과 바디를 넣으며 크게 외쳤다.
“윽!”
글러브가 아닌 미트인데도 옆구리가 묵직했다. 얼른 가드가 다시 올라갔다.
가드는 나를 방어하는 기본 동작이다. 상대의 공격에 맞지 않기 위해 두 팔과 글러브를 올려 나를 보호한다. 스타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높이는 대부분 글러브 끝선을 눈썹 정도에 맞춘다. 팔꿈치를 견갑골에 얹어 가슴 앞으로 닫는다. 얼굴은 제대로 맞으면 다운될 수 있는 급소여서 보호 1순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드란 게 참 쉽지 않다. 우선 주먹, 킥, 무릎 등 신체 전부 위로 다양한 각도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다 막기에는 두 팔이 커버하는 면적이 너무 적다. 그렇다고 거북이처럼 가드를 닫고 웅크리면 바로 뺨(목 잡기, 양팔을 고리 형태로 만들어 상대의 목을 잡은 뒤 중심을 무너뜨리며 무릎으로 공격하는 기술)에 잡힌다. 또한 복싱처럼 화려한 위빙이나 더킹에 의존해 피할 수도 없다. 과도한 위빙 동작을 할 경우 번개처럼 날아오는 킥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드는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시킨다. 보통 아마추어들의 글러브 무게는 12~16온스(남자 기준) 정도인데, 400g 내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가벼운 글러브가 시간이 지날수록 돌덩이처럼 무거워진다. ‘천근만근’이라는 말을 아는가? 격렬한 미트 연습이나 스파링 등을 할 경우 2라운드만 지나가도 가드가 점점 내려간다. 세컨드에서 ‘가드 올려!’라고 수십 번 외치는 게 들리지만 몰라서 안 올리는 게 아니다. 지쳐서 안 올라간다. 그렇다 보니 지치거나, 다른 방어 기술(주먹 캔슬, 위빙 등)에 의존해서 일부러 가드를 어느 정도 내리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에서 본 선수들의 화려한 회피 기술을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예 경기 스타일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바로 ‘닥공’이다. ‘닥공’이란 ‘닥치고 공격’이라는 뜻으로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을 말한다. 가드는 유지하기도 힘들고 결국 방어이기 때문에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실제로 유명한 MMA 선수들이나 닉무아이들은 가드를 턱까지 내리거나 얼굴에서 두 뺨 이상 앞에 두기도 한다. 그럼 닥공으로 가드를 내린 경우 어떻게 될까? 나도 앤더슨 실바처럼 칼 같은 거리 감각으로 공격을 피하고 화려한 주먹을 꽂을 수 있을까?
[가드가 필요 없는 화려한 회피 능력]
결과는 십중팔구 나의 패배. 선수들이 가드를 내리는 건 가드를 포기한 게 아니라 번개 같은 회피 기술 + 빠르게 주먹을 복귀해 가드를 형성할 수 있는 연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아까 주먹이랑 킥 넣는 콤비네이션 할 때 오른쪽 가드가 비어요. 그렇게 되면 실컷 때려도 카운터 한 방 맞으면 게임 끝납니다. 가드 무조건 올려야 돼요!”
미트 연습이 끝나고 관장님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몰랐던 게 아니다. 내가 구사하는 화려한 공격에 취해서 가드를 잊었다.
결국 가드란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정 장치이자 기본이다. 무에타이를 하다 보면 공격이 화려하고 좋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공격’만’ 잘해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공격이 먼저냐, 방어가 먼저냐는 질문은 마치 계란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는 질문처럼 모호한 질문이 아니다. 시합에서는 항상 방어가 먼저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승리에 직접적이지 않다고 소홀히 하는 순간 게임은 끝이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 좋아했던 옆반 선생님이 계셨다. 나보다 15년 이상 연배가 높으신 선배님이었는데, 전교조셨다.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의 소속 교원 단체를 근거로 한 교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을 무척 혐오한다. 그 선입견과 잣대가 싫어 지금까지 어떤 단체도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은 스스로를 전교조 교사라 자랑스럽게 칭하셨고, 내가 예전에 알던 전교조 교사의 장점의 프로토타입 같은 분이셨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며, 삶을 노래하는 것을 즐기셨다. 한창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불탔던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짧은 청소년 단체 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한참 봉사활동을 한 뒤라 배가 고팠는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냄새를 찾아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엔 신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선배님과 그반 학생들이었다. 몇 개의 돗자리 위에는 불판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었고, 거기에는 맛있는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고 있었다. 상추 등 쌈 채소, 쌈장까지 제대로 갖춘 한 상이었다.
“어, 선배님?”
“도선생, 와서 한 점해~”
“우와, 맛있겠네요. 진짜 먹고 싶기는 한데 청소년 단체 활동 마무리를 해야 해서요. 그런데 갑자기 웬 삼겹살 파티세요?”
“아, 우리 상추 길렀잖아. 그걸로 애들이랑 고기 한 번 먹는 거지 뭐.”
“오, 좋네요. 의미도 있고요. 그런데 추진하기 까다롭지 않으셨어요? 관리자분들 허락도 그렇고, 학부모들 동의도 그렇고요.”
“아, 그거? 말 안 했지.”
“네?”
예상 밖의 답변에 놀랐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우리 6학년은 소위 ‘찍힌’ 학년이었다. 관리자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통해 학부모들에게 인기는 많은 학년, 그래서 충분히 밉보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말해봤자일 것 같아 그냥 강행하신 듯했다.
“그냥 고기 먹는 건데 뭐, 수업 시간도 아니고 주말에.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면 된 거야.”
선배님의 낭만적인 답변에 나는 그냥 웃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그 선배님은 예전에 걸려 있던 소송(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불온서적 보유? 국보법 위반? 그런 내용이었다.) 최종 판결이 뒤집히면서 교사직을 잃게 되셨다. 관련 내용을 잘 몰랐던 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학교 내부에서도 술렁댔다. 그런데 참 고까운 것은 설왕설래하는 말속에 들린 내용이었다.
“사실 그 선생님이 학급 운영이나 수업도 마음대로 하긴 하셨지 뭐.”
“그래, 교육과정에 맞지도 않는 내용 가르치시고. 노동법? 뭐, 그런 거 수업하시고.”
“삼겹살 파티도 했다는 거 들었어? 학교에 이야기도 안 했대. 몇몇 학부모들도 항의 전화했다고 하더라고.”
“정말?”
등 뒤에서 칼 꽂는다고, 일이 벌어지자 이 때다 싶어 저열하고 치사한 말들이 나돌았다. 지나다가 듣는 내가 다 속상하고 울분이 차올랐다. 아이들을 향한 그분의 노력, 사랑, 희생을 알기나 하냐고 대꾸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때, 정말 다 괜찮은 거였을까?
교육은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다. 하지만 그게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변수가 있고, 위험 요소가 있기에 우리는 학생의 성장에 직결되는 내용을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제했고, 절차라는 장치로 교육 현장에서 위험 요소를 다스리고 있다. 어쩌면 절차는 최소한의 장치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교사들은 여기서 답답함이나 불편함, 부당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과정과 절차는 교실의 핵심인 동시에 족쇄인 것이다.
한창 열의만 가득했던 시절, 오로지 수업, 관계, 재미에 몰두했던 나는 학생들에게 뭐 하나라도 의미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키팅 선생님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옳다 싶은 것은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였다. 동료들의 고까운 시선, 관리자들의 질책과 제제는 나에게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얘들아, 교과서가 중요한 게 아냐.”
“인생을 배워볼까?”
다행히도 아량 넓고 멋진 학년 부장님들을 만나 내부에서는 눈치를 덜 보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사실 어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시도도 이해받으려면 근거와 합리적인 정당성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와 학생들이 아무리 의미 있다고 느껴도 타인의 인정을 원한다면 합의된 준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도선생, 너무 무모한 거 아냐?’
‘혼자 참교사인 것 같아.’
나는 나를 향한 수많은 말들을 어쩌면 ‘진짜 교육을 지지하지 않고 몸 사리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폄하하고 무시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나의 행적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만큼 뜨겁고 순수했던 적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무에타이에서 가드를 내리고 닥공하면 실패하 듯, 진취적(이라고 쓰고 공격적이라 비판 받는)이기만 한 교육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교육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교육과정과 절차라는 최소한의 장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이 있다면 어떻게든 교육과정과의 관련성을 찾아서 구성하면 된다. 하고 싶은 학급 행사가 있다면 어떻게든 학교 행사나 각종 계의 추진 내용과 엮어서 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 시대를 지나며 학교는 많이 유연해졌고 재량권이 생겼다. 예전처럼 교과서를 다 풀지 않았다고 항의받거나, 옆반과 진도가 다르다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새롭게 수업한다고 질시받는 시절이 아니다. 물론 여전히 관리자의 입김이 절대적이고, 주변의 타성에 젖은 동료들은 우리를 지치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가드를 올려야 한다. 그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중에 질책과 추궁이 두려우니 행발누가기록에 상담 기록을 끄적이듯 하라는 것이 아니다. 면피가 아닌 나의 해피를 가드를 꼭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