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누구냐 넌! (2)
“너네 뒤로 가서 봐야지! 안 그러면 눈 나빠진다!”
텔레비전에 몰입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엉덩이가 슬금슬금 앞으로 기어나가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그림과 매력적인 스토리, 사실 성인인 내가 봐도 재미있으니. 하지만 아이들의 시력이 나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한 기본 약속은 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뒤’가 어느 정도인지 정량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모가 적정 위치를 정확히 안내해주는 것이 낫다. 게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 내 눈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건 아이의 시력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솔직하고 담담히 말해야한다. 사실 ‘나는 눈 나빠져도 되는데?’라고 아이가 맞대응하면 엄마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쇼파가 없으니, 거실에 깔려있는 놀이매트를 활용하기로 했다. 만약 쇼파가 있다면 쇼파 위에 앉아서 보는 것으로, 없다면 거실 바닥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선 뒤에서 보기나 지정된 의자에 앉아서 보는 것으로 약속하는 건 어떨까? 이때 텔레비전 화면 크기를 고려한 적정 시청거리를 객관적으로 알려주고 아이와 함께 조정해보는 것도 나을 거 같았다.
“텔레비전을 볼 때는 매트 위에 앉아서 보는 게 어떨까?
너무 가까이서 보면 시력이 나빠질까봐 걱정돼.”
“또지또규! 너네 계속 밥 안 먹으면 텔레비전 끌 거야!”
코로나19로 인해 가정보육을 하다보니, 텔레비전으로 만화영화를 보는 시간도 함께 길어졌다. 시청 중에 식사시간이 되기도 해서 은연중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솔직히 텔레비전을 틀어놓으면 편할 때도 있었다. 무의식중에 아이들은 입을 움직여 음식을 삼켰고, 내가 입 속에 음식을 넣어주니, 비교적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입 안에 음식물을 한움큼 머금은 채로 텔레비전에 넋이 나가있었다. 이런 연유로 ‘밥 안 먹으면 텔레비전 끈다!’는 말을 연거푸 하고 있었다.
맙소사! 너 긍정 훈육을 공부한 엄마 맞니? 텔레비전을 옵션으로 식사를 종용하다니... 입 밖으로 그 말을 해놓고는 속으로 스스로를 한참동안 어리석어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 살배기 또규는 그 다음 식사 앞에서도 ‘띠삐! 띠삐!’를 외쳤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싶었다. 텔레비전 없던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봤다. 오히려 식사하는 동안 가족 간 대화가 훨씬 많았고, 서로의 얼굴을 더 많이 마주했다. 솔직히 아이들이 저작활동을 하는 동안 뇌 활동이 더 활발해져 뇌 발달에 좋다고 들었는데, 텔레비전을 보며 식사할 때는 아이들 입속에 음식을 집어넣기 바빴던 것만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후 약속을 정했다. 6살 또지는 우리의 약속을 이해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둘째 또규는 낯설어했고 텔레비전을 보여달라고 절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 모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기다려주었고, 울음을 멈추면 모두가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의 평화롭고 이야기가 넘치는 식사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 오늘부터는 밥 먹을 때는 텔레비전 켜지 않고,
가족들 얼굴 보면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먹는 건 어떨까?”
“또지, 언제까지 텔레비전만 볼 거야! 벌써 한 시간째야!”
제발 우리 집만 이런 게 아니라고 해주세요! 그동안 아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엄마인 나조차도 의아할 정도로 텔레비전이 처음 생긴 후 아이는 만화에 더 몰입했다. 물론 텔레비전이 없을 때도 아이들은 패드로 하루에 30분 내외로 만화영화를 즐겼었다. 하지만 커다랗고 실감나는 화면으로 만화를 보니 더욱 쉽게 끊을 수 없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고, 아이는 ‘한 개만 더 보면 안 돼?’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솔직히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엉덩이 한번 붙이고 잠깐이나마 쉴 수 있어서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끄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점차 텔레비전에 대한 흥미는 줄어들지만 집착의 느낌으로 텔레비전 시청에 매달리곤 한다. 그러면 시청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왠지 모를 불편함과 죄책감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아이들도, 나도 부정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다음 활동을 즐겁게 이어나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간단한 가족회의를 통해 텔레비전 시청을 하기 전에 미리 시청할 시간이나 프로그램을 보기로 약속했다. 참 아이들에게 고마운 부분이다. 부모의 강요가 아닌 제안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준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고, 본인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또규 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이 과정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기에 소홀히 하기 어렵다.
“우리 텔레비전을 얼마만큼 보면 괜찮을지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육아를 하면서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시행착오가 많다. 평소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되면 좌충우돌이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함께 정답보다는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인 것은 그 노력의 과정이 아직까지는 가족 모두에게 괜찮은 결과를 안겨주었고, 안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른의 제안을 아이가 듣고, 다시 아이 입장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이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의 기다림이다. 가끔은 반나절, 아니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보채지 않고, 충분히 자기 속의 진짜 마음이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 신기한건 그 과정에서 아이는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안을 마련해낸다. 가끔은 아이의 그렇게 우리의 생각을 서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아이도 그 결과를 적극 수용적 태도를 보인다. 항상 이 같이 평화롭지는 않지만,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있기에 이런 과정을 비교적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슬기로운 TV 생활을 위해 더 깊은 고민과 애씀이 필요하겠지만, 서로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육퇴 후 텔레비전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