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라도 알아채서 다행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한해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뒤돌아보니 이미 가을의 끝자락에 서있었고, 왠지 가을 소풍을 떠나고 싶었다.
토요일 출장이 잡혀있는 신랑을 따라 무작정 나와 또지 그리고 또규는 함께 따라나섰다. 급하게 출장지 근처에 있는 숲 놀이터를 찾았고, 그 곳으로 우리 셋이 짧은 가을 소풍을 떠났다.
높게 뻗은 노란 은행나무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과 벅차오름.
숲 놀이터에서 환하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이 주는 생기.
그 자체만으로도 ‘참 좋다!’ 싶었다.
여러 놀이기구를 이용하던 중 통나무 징검다리 같은 놀이기구가 있었고, 두 아이들은 그 곳을 건너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름다움 풍광과 두 아이의 모습을 함께 담고 싶어서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대화가 시작됐다.
“엄마, 나는 뛰는 것마다 그 숫자대로 가!”
“알았어!”
일단 나는 또지의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의식중에 대답부터 했다. 그 순간 또규는 짧은 다리로 힘껏 내딛어 징검다리 건너기에 처음 성공했다. 그 반가움에 나는 또지의 말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가볍게 넘겨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또규! 성공했다! 대단해!!! 또 도전! 아자!!!”
또규에 한껏 집중한 채로 또규를 응원했고, 또지도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도전을 함께 외쳐주었다. 그저 같이 응원하는 줄 알았다. 그때 또규는 다음 징검다리로 건너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런데 또지가 다시 한 번 엄마와의 대화와 놀이를 시도했고, 그 순간 또규는 앞뒤 징검다리에 다리를 한쪽씩 걸쳐서 위태위해하게 서있는 상황이었다. 징검다리 건너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또규는 가까이에 있는 누나에게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평소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누나이기에 당연히 도와줄 것으로 예상했다.
“엄마 쿵! 한번 뛰면 한번 갈 거야.”
“아, 엄마가 뛰어야해?”
“(끄덕끄덕)”
“(한 번 뛰면서) 쿵! 규원아~ 천천히!!!”
“엄마 두 번 뛰면 두 번 가고~”
“어, 알았어~ 근데 잠깐만 또지야, 지금 또규가 위기야. 손 한번만 잡아 달래. 부탁해. 또규 떨어지겠는데? 누나가 한 번 도와줄 수는 없을까? 또규 좀 잡아주라~”
“.............”
“엄마 조금 마음이 그렇다.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형제끼리 도와주면 안 될까?”
“.............”
하지만 또지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동생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손을 내어주지 않는 또지가 서운했다. 그래도 기분 좋게 나온 가을 소풍이니만큼 잔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귀가 후 가족 모두가 오늘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다시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나무 징검다리에서 찍었던 동영상을 다시 볼 때였다.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손을 내어주지 않던 또지의 표정과 행동에서 속마음이 느껴졌다. 엄마라서 알 수 있는 우리 아이의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또지에게 둘만의 대화를 따로 청했다.
“또지야, 엄마랑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응?! 왜 그러는데?!”
“엄마가 잘 못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아까 통나무 건너기 할 때 또규 손 안 잡아줬잖아.”
“......응......”
“혹시 왜 그랬어? 엄마한테 서운했어?”
“......응......”
“왜 그렇게 느꼈어?”
“나를 챙겨주지 않는 거 같아서...”
“엄마가 점프 놀이 같이 안 해주고, 또규만 파이팅하라고 해줘서 서운했어?”
“응, 그래서 속상했어.”
“그랬구나... 엄마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또지가 많이 속상했었겠다. 진짜 미안해.”
“괜찮아.”
“우리 다음 주에 그 숲 놀이터 또 갈 건데, 우리 그때 점프 놀이 더 재미있게 하면 안 될까?”
“그래!!! 완전 좋아!!! 그럼 그 때는 또규도 같이 할까? 우리 셋이서!”
“그러자. 우리 셋이 더 재미있게 놀고 오자!”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또지는 놀이를 만들어냈고,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지가 제안한 놀이에 엄마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또규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엄마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도전!’을 외치며 또규를 함께 격려했지만, 속으로는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작고 큰 상처를 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내면 어딘가에는 아팠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서로의 감정을 더 세심히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늦게라도 또지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