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생각은 어때?"
‘6년’
어떤 교육기관이든 6년이면, 졸업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육아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은 졸업은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특히나 가장 쉽고도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 아이의 생각을 묻는 일이었다. 아이가 말이 아닌 행동이나 옹알이로 표현하던 시절부터 내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다.
“그럼 또지야, 니 생각은 어때?”
“아!!!”
그 덕분이었을까?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자기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열린 태도를 지닌 부모라고 장담해왔다.
말이 서툰 만 3세 정도까지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능했다. 아이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아이는 표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기 생각을 열심히 표현했고, 우리는 들었다. 그리고 우리와 생각이 다르면 어른의 시선으로 설득했고, 아이는 반박할만한 언어 능력이 안됐기 때문에 설득을 당했다. 사실 말할 기회만 받았을 뿐, 자기 생각대로 해볼 경험은 많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만4세 후반부터 자기만의 이유를 만들어서 부모를 설득하더니, 만5세가 되어서는 그동안 당한 서러움을 씻어내려는 듯, 아니면 어른들 말씀처럼 엄마를 이겨먹으려는(?)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지야, 이제 집에 가자! 그래야 내일 어린이집도 가지!”
“......”
“얼른 양말 신고, 갈 준비하자!”
“......엄마 근데......”
“응? 왜 그래?”
“나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갑자기 왜? 엄마는 지연이랑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음, 내 생각은 좀 달라.”
“그래? 또지 생각은 어떻게 다른데?”
“응~ 내 생각은 할머니네서 할머니랑 같이 자고 싶은 생각이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도 돼?”
“엄마는 집에 가면 아빠랑 또규랑 같이 잘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가 다 집에 가면 할머니는 혼자 자야하잖아. 그러면 할머니는 밤에 말할 사람이 없어서 심심할 수도 있고, 혼자 자면 무서울 수도 있잖아.”
“또지는 그런 생각이야? 또지가 그냥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은 게 아니고?”
“나도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은데, 할머니도 혼자 자면 그럴 거 같아서~”
“엄마 잠깐만 생각해봐도 돼?”
“응! 그래. 엄마도 생각할 시간을 가져봐!”
친정을 방문했던 날에 또지와 나눈 대화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작물을 살피러 시골 밭에 가셨고, 할머니는 본가에 혼자 계셨던 날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던 또지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자기 생각을 펼쳤다. 사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면 ‘땡큐!’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어린이집을 가야하고 방문학습지 선생님도 오시는 날이기 때문에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또지가 준 잠깐의 시간동안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아이는 머릿속에서 수많은 이유를 생각하려던 모습이 대견했고, 어린이집 하루쯤 안가는 건 이 아이 인생에서 큰 영향력이 없으리라 판단했다. 오히려 할머니와 단둘이 보내는 하룻밤이 더 큰 추억과 즐거움으로 남으리라 생각했다.
“또지야, 엄마가 생각해봤어.”
“응, 엄마 생각은 어떤데?”
“엄마는 하루 정도는 할머니랑 또지랑 사이좋게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또지가 말했던 이유들이 충분히 이해갔거든. 하지만 어린이집도 너무 오래 결석하면 안 되니까, 내일은 집으로 오는 게 어떨까?”
“응, 좋아. 나도 엄마 생각이랑 같아.”
“그래, 그럼 할머니랑 즐겁게 이야기하다 같이 자고 와!”
“오예~ 고마워, 엄마!”
아이는 폴짝폴짝 뛰며 너무 신나했다. 단지 할머니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신날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 마음으로는 자기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고, 그 의견이 수용되었다는 것 또한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바랬다.
어른으로서 아이의 의견을 묻거나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의견이 나와 일치한다면 다행스럽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당황스럽다. 일단 기회를 주었으니, 나의 의견과 동등한 위치에서 고려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이는 어리다. 고로 아이의 생각도 미숙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나와 다른 아이의 생각을 설득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부모의 말습관을 충분히 보고 자란 아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아이는 자신의 의견과 그 이유를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은 제대로 듣고 수용 혹은 비판할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금씩 ‘가족회의’라는 형식으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우리의 첫 가족회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