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또지야,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또지야, 방으로 옮겨줄 수 있겠니?”
“또지야, 엄마 대신 또규를 도와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린 아이의 작은 손 하나도 아쉬운 순간들이 참 많다. 삼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웠기에 나의 큰 딸에게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과연 하루동안 큰아이(애칭_또지)에게 몇 번의 도움 또는 부탁을 청하고 있을까?
처음 어른의 부탁을 받은 아이는 본인의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 정말 신나고 열정적으로 임한다. 그리고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가득찬 얼굴로 다가와 당차게 말한다.
“엄마, 내가 다 했어!”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아이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며 주도성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어른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어깨도 으쓱해졌을 거다.
그랬던 또지가 변했다.
“또지야, 엄마가 지금 못 움직이는데, 물티슈 좀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엄마,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그림 색칠을 하고 있어서 어려울 거 같아.”
“엄마 지금 좀 급한데, 가져다주고 색칠하면 안될까?”
“엄마 그런데 난 지금 이게 더 중요해서. 색칠 다 하고 가져다줘도 될까?”
세상에. 맙소사. 이럴수가.
또지가 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거절의 말을 들은 순간,
‘잠깐 가져다주고 가면 안 되나?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치사한 지지배,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나는 내가 직접 물티슈를 가져와야했다.
그날 이후 몇 번을 곱씹어 다시 생각해봤다.
나는 아이에게 ‘가져와!’가 아닌 ‘해줄 수 있을까?’로 ‘부탁’을 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정에서도 어른이 아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때가 순간순간 많다. 아이가 당차게 ‘싫은데요.’ 혹은 ‘안돼요.’라고 말할 때면, 어디 어른 말을 거절하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부탁을 받은 사람이 어린 아이일지라도 자신의 상황이나 나름의 이유 때문에 거절할 수도 있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수용해야한다면 이 또한 불합리한 처사다.
아이가 보다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어린 시절부터 자기 내면의 생각은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 거절하는 방법도 연습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