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누구냐 넌! (1)
“TV는 신랑분이 생각하셨던 게 있으실까요?”
혼수로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판매원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다른 가전을 살펴볼 때는 이렇게 한 번도 안 묻더니, 갑자기 텔레비전 앞에서 쌩뚱맞게 왜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신랑이요? 아무 말 안하던데요?”
“아, 보통 남자들이 텔레비전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좀 있어서요~ 인치나 기능을 따지시거든요.”
“잠깐만요, 그러면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급하게 통화로 물어봤으나,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실용적인 거 사자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신혼집에는 첫 텔레비전이 생겼고, 우리는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몇 년 후 새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타일 아트월에 텔레비전 설치 시공을 해줄 전문 업자를 찾아야했다. 나의 귀차니즘이 최대치였기에 알아보지도 않은 채로 그리고 당연히 텔레비전도 없는 채로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집에서는 텔레비전이 사라졌고, 생각보다 우리 셋은 그 환경에 잘 적응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이나 에너지로 또 다른 생산적인 활동들을 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텔레비전을 중고 처분했다.
또지 한 명을 키울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기관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낮에는 볼 일이 없었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책 읽기, 그림 그리기, 클레이도우 만들기 등 할 게 많았다. 그리고 거실 아트월은 또지의 각종 미술작품을 전시하기에 참 좋았다. 친정엄마는 ‘이거 저거 붙어있으니, 정신사납다.’, ‘애들도 텔레비전을 봐야지 너무 안 봐도 나중에 집착한다.’ 등 우리집에 티비가 있어야 할 이유를 늘어놓으셨다.
사실 둘째 또규가 태어나고는 텔레비전에 대한 필요성을 내가 가장 많이 느꼈다. 아가 또규를 챙기면서 누나 또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았고, 식사 준비, 청소 등 집안일을 할 때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매달리면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이 있는 것이 과연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될까?’ ‘휴직 중에 큰돈을 지출하는 것이 괜찮을까?’ ‘그래도 텔레비전이 있으면 교육적인 영상도 볼 수 있으니 좋지 않을까?’ ‘솔직히 해넘이 할 때 카운트다운하는 모습도 봐야하지 않나?’ 등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텔레비전이 생겼다.
때마침 취업에 성공한 막내 동생이 취업턱으로 텔레비전을 쏜 것이다.
자기 몸짓보다도 큰 텔레비전을 본 또지와 또규는 한바탕 신이 났다. 작은 테블릿에서 보던 공룡이나 카봇을 훨씬 뛰어난 생동감과 화질로 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신문물을 처음 접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났고, 우리집에는 새로운 잔소리가 생겼다.
“너네 뒤로 가서 봐야지! 안 그러면 눈 나빠진다!”
“또지또규! 너네 계속 밥 안 먹으면 텔레비전 끌 거야!”
“또지, 언제까지 텔레비전만 볼 거야! 벌써 한 시간째야!”
‘어랏, 나 지금 왜 이러지? 평소에 아이들에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히 말하려고 애쓰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고,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