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
2018년 10월, 또지가 4살 때.
2019년 10월, 또지가 5살 때.
그리고
2020년 10월, 또지가 6살 때.
매년 이 시기만 되면 아이를 어떤 기관에 보내야할 지 고민이 시작된다.
그때마다 기존에 다니던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가 현재의 기관에 적응을 잘하고 있고, 그 안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존중했었다. 게다가 4-5세에 접했던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의 교육관이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것과 색이 비슷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재웠했다.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마지막 한 해이다.
지금처럼 아이를 국공립 어린이집에만 두어도 될까?
그래도 유치원은 교육적으로 다르다던데 옮겨야 하는 건 아닐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또 다른 방안은 없을까?
내년 복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이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기회비용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가진 교육관이나 가치관, 혹은 아이의 성향이나 기질 등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연거푸 고민을 이어가던 중에 저녁 식사를 하며 또지에게 물었다.
“또지야, 내년에는 큰 유치원에 다니자! 지난번에 재미있었던 배 놀이터 있는 곳!”
“싫어~”
“거기 아니면 영어로 말하고 노는 유치원도 있어! 거기는 어떨까?”
평소 영어유치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물론 경제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1년은 경험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또지에게 제안했었다. 하지만 또지의 대답은 당황스러웠고,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싫어. 난 거기도 안 갈거야.”
기대보다는 차분하고 여유 있게, 그리고 명확한 태도로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큰 변화를 싫어하고, 적응이 꽤 걸리는 아이었다. 그래서 기관을 바꾸는 것을 거부하는 걸까?
물론 평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편한대로만 살 수는 없기에 아이를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왜~ 거기는 영어로 재미있게 놀 수 있고, 그 안에는 재미있는 공간들도 지금보다 많아!”
“그래도 안 갈 거야. 나는 지금 우리 어린이집이 좋아!”
평소 말도 안 되는 외계어로 노래를 부르며 ‘이건 영어 노래야!’라고 하거나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영어를 상황에 말할 때 엄마로서는 욕심이 났다. 환경을 조성해주면 왠지 잘할 거 같은데... 싶은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또지야, 엄마는 또지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유치원을 다녀보면 좋을 거 같은데, 엄마 말 좀 들어줘~ 넌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주냐?”
방긋 웃으며 딸아이 앞에서 앙탈이 섞인 듯한 말투로 애교를 부려보았다.
하지만 역시 우리 또지, 넘어오지 않는다.
“엄마는 내 말을 왜 안 들어주냐~ 내 말 좀 들어줘야지!”
능글맞게 엄마 말투를 응용해서 재치있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더 이야기했다가는 아이의 반감을 살 거 같았지만,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왜 가기 싫은데? 거기 가면 지금 어린이집보다 커서 더 재미있는 공간도 많고, 더 많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나는 지금 우리 어린이집이 좋아!”
“왜 그렇게 느꼈는데?”
“재미있단 말이야!”
“그래도 한 번 가보고 결정하자.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을까?”
아이는 잠깐의 침묵을 갖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내가 우리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에 말했어야지!”
아이의 말을 듣고 순간 기가 차서 입은 떡 벌어졌으나 아무말도 안 나왔고, 두 눈은 자동적으로 커져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옆에서 입을 틀어막고 웃는 신랑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또지야, 그런데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것 보다 유치원이 어떤 곳인지 한 번 놀러가보자. 직접 보고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드디어 내 의견을 거들어주는 신랑이 고마웠다. 하지만 또지는 참 굳건했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 좋단 말이야. 내가 다니는 거잖아. 그러면 내 생각을 들어줘야지.”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이가 다니는 곳이었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분명 한 번은 같이 가보고 최종 결정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한 발 물러날 때였다.
또지의 분명한 의견 표현이 참 반가웠다.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 단지 어른들의 생각과 다른 내 생각을 말하면, 어른들 말씀에 말대답한다는 혹은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래서일까? ‘또지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어 반가웠고,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또지가 사춘기가 되면 보통은 아니겠다싶어서 험난한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다.
아이가 말대답하거나 떼쓰기, 대드는 것 등을 무작정 들어주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과 그 까닭을 분명하고 타당하게 펼치기는 어렵다. 그러니 부모의 생각과 결이 다른 의견을 말할 때 우선을 들어주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어볼 수 있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분명히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들고, 부모의 인내심마저 시험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상대와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또지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먼저 자기 생각을 진지하게 말하려는 또지가 더욱 더 사랑스럽고, 고맙다.
“엄마, 내 생각은 다른데, 내 생각도 들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