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근육
“엄마, 아가 이거!”
마트 장난감 코너에 들어선 또지가 대뜸 뽀로로 장난감을 하나 들더니 마성의 눈웃음을 보이며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응?!”
그 당당한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순간 넘어갈 뻔했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금 말해주었다.
“아, 또지 그게 관심이 있구나? 하지만 오늘은 또지 장난감을 사러 온 게 아니야. 엄마가 마트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이야기했지요?”
또지는 금세 표정이 시무룩해지고, 장난감을 만지막만지작 거리며 내려놓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니 장난감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내가 안 사주고 버티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또지와의 약속이었기에,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또지야, 또지가 너무너무 갖고 싶구나. 하지만 오늘은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없어. 오늘은 엄마도 정말 안타깝지만, 나중에 엄마랑 다시 약속하고 오자!”
또지는 이날 진한 아쉬움이 남는 표정과 평소보다 몇 배는 느려진 손동작으로 장난감을 내려놔주었다.
“고마워, 또지! 대신 다음에 정말 꼭 다시 오자.”
그리고는 짧은 시일 내에 약속을 하고 다시 마트를 찾았다. 약속을 한 엄마가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또지와 외출하기 전, 특히 백화점이나 마트, 서점, 문방구 등을 함께 갈 때면 으레 미리 말해준다.
‘오늘은 장을 보러 온 거지, 장난감을 사러 온 건 아니야.’
‘오늘은 또지 장난감을 하나 살 거야.’
‘오늘은 또지가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골라볼 거야.’
굳이 사전에 말해주는 이유는 아이와의 즐거운 외출 중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줄이고, 그날의 외출 목적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내 안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그냥 또지가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한 것인데, 아이보다 조금 더 합리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어른(혹은 엄마)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꺾는 것이 아닌가싶은 생각에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긍정의 훈육에서는 아이가 이런 (장난감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게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아이는 실제로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망근육’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고생, 힘듦, 좌절 등을 경험해볼 기회를 주면 아이는 그 경험 속에서 ‘실망근육’을 키워가면서 실망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다. 그렇다고 부모가 이러한 경험을 일부러 제공하거나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이때 부모로서 아이가 긍정적으로 맞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당장은 아이가 실망을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매 순간마다 그렇게 해주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사전에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약속’된 바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해줄 수 없었다.
물론 어린 아이는 ‘약속’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부모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자기 수준에서 수용할 뿐이다. 만 25개월된 또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약속’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를 그려나가고 있다.
1년 전 글 속에 기록되었던 또지가 어느새 38개월이 되었다.
“또지야, 이제 깜깜이 선생님이 오셔서 자야할 시간이야!”
“엄마, 나 조금 더 놀고 싶어요!”
“그래? 그럼 몇 시까지 더 놀고 잘까?”
“음.... 5분 더!”
“그래, 알겠어. 5분 뒤에 엄마가 말해줄게.”
“네~”
사실 만 3살인 또지는 시간의 개념은 모른다. 단지 ‘5분’이라는 표현을 알게 된 또지는 자기 의지로 잘 시간을 정했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다. 그리고는 엄마 혹은 아빠와 시계를 보며 여기까지 오면 잠자리에 든다고 약속한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의 또지는 시계침이 약속한 숫자에 위치했을 때 약속대로 잠자리로 향한다. 이때마다 ‘약속’의 의미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 작은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엄마, 나 이거 햄버거 가게 갖고 싶은데...”
“또지 이거 집에 없어서 갖고 싶었구나? 그런데 오늘 서점에 왜 왔지?”
“스티커 사러.”
“그래, 맞아. 스티커 사러 왔어.”
“그럼 엄마 이건 어떨까? 음, 오늘은 스티커 사고 다음에 오면 햄버거 가게 사는 건 어떨까?”
“다음에 올 때 또지가 햄버거 가게가 꼭 필요하면 그렇게 하자.”
“그~으~래~.”
문구점을 같이 운영하는 동네 서점에서 또지는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만큼 또지가 막무가내로 우기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다음을 약속하며 쿨하게 내려놓았지만, 막상 다음에 다시 왔을 때 동일한 것을 사고 싶어 할 때가 많지 않았다.
아이의 실망근육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모습을 볼 때면 부모로서 나 또한 천천히 성장해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값진 내일을 만들어줄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내 아이의 성공만큼이나 실패 또한 적극적으로 격려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일은 또지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실패축하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