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학, 학당교]#7 이게 창의성이야?
교사를 화나게 만드는 '창의성'이 있다.
미술시간, 김교사는 학생에게 '수채기법 배우기'를 목표로 주제는 자유롭게 하도록 안내하였다.
"오늘 수채물감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건데,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자유롭게 해보세요."
5분이 지났을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다했어요!"
"응? 정말?"
그냥 봐서는 그저 흰 도화지만 덩그러니있을 뿐. 선생님의 궁금즘에 학생은 이렇게 답한다.
"눈밭에서 뛰어노는 흰토끼를 표현했어요! 어때요? 창의적이죠?"
이런 전설같은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필자라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누가 이런 걸 보고 창의적이래?' 하지만 화는 낼 수 없고, 이를 악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럼, 이제 밤이 된 모습을 표현해 볼까?"
이 전설에는 두가지 당황스러움이 있다.
학생에게 잘못된 자유로움을 준 교사와 창의성을 잘못 이해한 학생이다.
한 때 학생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 경종에 울렸던 광고
교사 편의적 창의성을 벗어나다
우선 교사가 만든 당황스런 모습부터 알아보자.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창의성(創意性, 문화어: 창발성)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과 연관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다. 창조성(創造性)이라고도 하며 이에 관한 능력을 창의력(創意力), 창조력(創造力)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여기서 창의성의 핵심은 "새로운 생각과 개념, 혹은 기존의 생각과 개념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표현하거나 조합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김교사의 미술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김 교사가 수채물감이라는 도구를 정해준 것 외에 학생이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떠올리고 조합할 수 있도록 제공해준 최소한의 경험과 기회는 무엇이었을까?
없다. 그는 그저 "자유롭게 표현하세요."라고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이 주어 질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늘 하던 대로 졸라맨을 그릴 것이며, 턱도 없는 논리로 이 시간을 빨리 끝낼 궁리를 하는 것이다.
창의성도 최소한의 받침이 필요하다. (필자는 창의성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의 입장에서 혹은 교사 연수에 참석했을 때 접하는 "자유롭게 해 보세요"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첫번째, 기본기는 필요하다. 학생도 졸라맨보다는 잘그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표현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원더랜드가 도화지위에서는 폐허로 세워진다. 그러므로 창의성이 필요한 활동일 수록 기본기가 중요하다.
매일 두 줄씩 글쓰기, 아침 랜덤 사전 찾기 활동등은 학생의 문장력을 확 늘려준다. 매일 두 줄씩 글을 쓰되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한다. 문장표현이 솔직해 지고, 감정표현이 풍부해진다. 아침 랜덤 사전 찾기 활동은 짝끼리 사전의 아무 쪽이나 펼쳐서 나온 낱말을 읽어주고 뜻을 예상하게 한 다음 실제 뜻과 비교하여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필자는 미술시간 초반에 참쌤의 콘텐츠스쿨의 그림따라 그리기 활동 중 인물표현하기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였다. 학생의 그림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의 풍부한 표현이 작품의 수준을 높인다.
학생들은 자신의 그림 실력이 늘어간다는 뿌듯함과 함께 표현력도 크게 상승하였다.
두번째, 제약과 연결을 분명하게 한다.
필자가 미술 시간에 다음과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지루한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그려보고 싶은 그림"
학생은 다같이 미친듯이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대할 수 있는 창의성은 무엇일까? "없다"
한 학생이 색연필을 한번에 10개씩 쥐더니 도화지에 마구 칠하기 시작했다. 옆 친구가 그걸 보더니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옆에 다가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색연필하고 칠하는 방식은 옆 친구랑 똑같이 했으니까, 남은 건 도화지 밖에 없어 이것만큼은 너가 생각한 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자 학생은 도화지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구겨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결과물이 나온 건 덤이었다.
낙서가 끝나 각자의 작품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제 진짜 창의성을 발휘해볼 시간이다. 학생들은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 이름을 붙이는 활동을 하였다. 작품도 만들고 제목도 붙여야하는 부담은 줄여주고 작품은 성의 없게 만들되, 작품을 붙일 때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친구가 기존에 붙인 제목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자유롭게 나두는 것은 그 무엇도 자유롭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제약과 연결이 창의성의 창끝을 날카롭게 만드는 무기였다.
채색도구와 표현형식의 제약을 주고 도화지 하나에 집중하게 하자 새로운 생각이 나왔다.(좌)
친구의 천편일률 적인 제목 붙이기에 자극을 받자 새로운 형태의 제목들이 나온다.(우)
창의적 결과물은 설득 가능한 범위여야 한다.
학생의 학습 결과물은 그 어떤 형태나 내용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창의적인가는 고민해야 한다. 앞서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 무작정의 자유를 주는 것은 가장 창의적이지 못한 행위임을 정리하였다. 그렇다면 학생이 알아두어야 할 창의적 활동의 주의점은 무엇일까? 길면 이야기하다가 까먹는다. 간단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로 정리하자.
초등학생의 창의적이고 웃긴 답변이라며 돌아다니는 '짤'들. 그러나 수준은 다르다.
'원래는 사각형인데 찢어졌다'는 답변은 충분히 설득가능한 범위에 들어온다. 그러나 '네?' 사진은 어떤가?
설득가능한가?
어색한 이름짓기이지만 고개를 끄떡거릴 수 있는 설명이었다.
원래 새로운 생각과 개념은 배척당하고 이해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자신의 창의적인 결과물이 어떤 생각을 통해서 왔는지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므로.
창의적인 활동이 낯선 풍경처럼 느껴진다.
학생은 많이 당황스럽다.
자신들의 창의성이 어떤 시간에 어디만큼 허용되는지 괜찮을지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날 있는 힘껏 창의적으로 열심히 하면 "누가 이렇게 하래?" 소리 듣고, 어떨 때는 "왜 이렇게 생각이 없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학생은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교사가 좋아할 만한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나마도 인정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본다. 원하는 모습을 정해놓고 시작한 것은 아닌지.
혹은 애초부터 답이 하나 밖에 없는 '답정너'활동을 한건 아닌지 말이다.
교사 편의적 '창의성'을 경계하고, 평소의 활동에서 학생이 생각할 기회를 빼앗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