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그림책] #6 땀 냄새가 훅 끼치는 그림들
제 유년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는 만화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드래곤 볼>이나 <슬램 덩크>도 안 봤다고 하면, 친구들이 "정말?" 하고 놀라곤 했죠.
"그럼 너는 어릴 때 뭘 보면서 지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도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나가서 뛰어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읽을 책이 넘쳐나지도 않았던 그 시절,
저는 도대체 뭘 하며 그 모래알같이 많은 날들을 지나 왔을까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요?
만화대여점도 다 사라져버린 이제, 저는 만화와 그래픽 노블까지 사서 모으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림책 대신 그림이 들어 있는 책, '만화' 두 권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온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만화를 발견했거든요.
제가 들고 온 첫번째 만화는 바로 <저 청소일 하는데요?> (김예지 글, 그림) 입니다.
작가는 좀 자유롭게 지내고도 싶고, 좋아하는 그림도 계속 그리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그 길로 27살부터 청소일을 시작했다고 해요.
2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에 종사하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그녀가 청소를 하고 있는 걸 본 사람들이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 보는 일도 정말 많았다는데요.
"젊은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해?"
하고 직접 묻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요.
길이나 직장에서 청소를 하는 분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맘이 짠해지는 걸 느끼곤 합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고, 응당 돈을 받고 열심히 자기 맡은 일을 하시는 것이겠이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른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에게서 못 느끼는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더렵혀진 곳, 사람들이 모두 손대고 싶어하지 않은 곳을 매일 마주하는 분들이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었어요.
애잔함 보단 미안함, 미안함을 넘어 숙연해지기도 하는데
막상 청소를 하는 분들은 어떤 맘으로 하고 있는지 시시콜콜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화입니다.
그나저나, 청소일을 하는 작가에게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꽃으로 사람들은 행복해하나, 그녀에게는 꽃가루가 엄청난 복병이었고,
강한 햇볕에 타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도 옷과 옷 사이에 빈틈은 햇살의 자국을 남겼다는군요.
맞아요. 겨울은 생각하는 그대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누군가를 청소를 해야 하고, 그게 바로 그녀의 일이었으니까요.
작가는 소개팅에 나가서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쭈뼛대며 말을 더듬는 스스로를 보며 더욱 당황스러웠다고 해요.
나는 이 일이 싫지 않고, 시간 대비 벌이도 나쁘지 않은데,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이죠.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청소일을 나가지 않는 날, 그걸 한 올 한 올 그림과 글로 그려낸 작가가 더욱 범상치 않아 보이는 책,
여러분도 읽고 싶어지셨나요?
두 번째 만화는 <까대기> (이종철 글, 그림)입니다.
"까대기" 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택배를 싣고, 내리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일컬어 까대기라고 말한다고 해요.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서울에 올라 와 6년간 까대기 알바를 했던 경험을 고스란히 만화로 담았다는군요.
저는 한달에 책을 50만원 넘게 삽니다. 그러려면 이틀에 한 번 꼴로 택배를 받게 되죠.
바쁘다는 핑계로 늘 알x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요. (이용한지 15년이 넘었습니다.)
책 택배만 해도 1천번은 넘게 받지 않았을까요?
놀랍게도 책은 1권만 사도 무료배송이지요.
너무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15,000원짜리 치킨을 시켜도 이젠 배달비가 따로 드는데, 책은 1권만 해도 무료배송이니 거저나 따로 없죠.
출판사가 좀 가져가고, 책을 쓴 작가가 좀 가져가고, 서점에서 좀 떼어 가고 나면 택배 기사들은 도대체 건당 얼마를 받고 이 일을 하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 1권을 읽는 게 이렇게 편하고 저렴하다는 게,
정말 민망할 정도로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만화는 택배에 관한 모든 걸 낱낱이 그리고 있습니다.
까대기 알바는 다른 알바보다도 아주 고강도의 힘든 노동입니다.
그래서 첫날을 온전히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례도 빈번하다고요.
몇 시간 알바한 돈 떼여도 좋으니,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치는 것이죠.
그래서 알바들끼리도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저 사람도 얼마 못 버티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젊다고 무조건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 일.
요령없이 하다가는 알바비보다 병원비를 더 많이 쓰는 직업이라고 해요.
허리와 목, 어깨가 박살나기 딱 좋은 작업들이죠.
가장 두려운 항목은 쌀 포대, 생수 묶음, 배추철에 한없이 쌓여 있는 배추, 김장철의 김치라고요.
김치가 발효돼서 펑! 하고 터져버리기도 하면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거죠. 줄줄 새는 붉은 김치 국물이 다른 택배까지 오염시키니까요.
몸이 아파서 하루를 쉰다고 하면 그 일은 고스란히 다른 동료들의 몫이 되거나,
내일 두 배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므로 병가를 쓰는 일은 어림없었다는 작가.
인력난과 밀려드는 물량은 결국 지나친 가격 경쟁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배송료, 조금 더 싸게, 조금만 더 싸게 낮추다 보니 결국 그 틈에서 희생 당하는 건 물건을 직접 만지는 택배 기사들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배송 조회를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급하면 직접 사러 가는 게 맞겠고, 어련히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겠지요.
설령 그게 늦는다고 해도, 그걸 전해주는 택배기사가 우리의 조바심이나 화풀이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거든요.
개인이 시시콜콜 자신의 하루하루를 다루고 있으나,
구조를 보여주는 만화책, 혼자의 고생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모두를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만화책,
그래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애정이 가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땀 냄새가 나는 책'은 무엇인가요?
함께,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