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World] 0. 놀이, 보드게임
선생님, 자유시간 주세요.
너희, 정말 자유시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니?
아이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해줍니다.
선생님은 자유시간을 가졌을 때 충분히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한 채 머뭇머뭇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 왔다. 어른들이 그렇더라.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을 때, 들뜬 목소리로 우리 뭐 하면서 놀지? 라는 질문과 함께 놀거리를 찾기 위해 논의를 시작하지만, 몇 마디 특별한 중얼거림이 알 듯 모를 듯 지나간 후에 다시 우리 뭐 하면서 놀면 잘 놀았다는 소리를 들을까? 와 비슷한 의미의 말들을 불규칙하게 내뱉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가 한 사람 두 사람씩 논의에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저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버리면서 의무에 사로잡힌 자유롭지 않은 자유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 너희들은 안 그럴까? 만약 지금같은 갑작스런 요청으로 자유시간을 주면, 아마 너희들은 이 자유시간이 끝날 때까지 야, 우리 뭐 하면서 놀까? 를 반복하여 말하는 것 이상을 하기 어려울 것이야. 그런 경험들이 다들 있을텐데...?
우리 갑작스러운 자유시간 말고, 조금 더 준비된 자유시간을 다음에 가져보자.
학급 어린이회의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해 보자.
그런데, 올해는 고요 사이에서 이렇게 외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자유시간에 보드게임을 하면 되잖아요!
네. 저희 아이들에게는 갑작스런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충분히 즐겁게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이라는 놀잇감이 있습니다.
2016년도 학년 말미의 학급 보드게임들. 올해는 더 많아졌습니다.
학교 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시에 등교한 아이들은 14시 30분에 6교시를 마치고 하교를 시작할 때까지 5시간 30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그 중, 40분씩 6시간, 즉 4시간 정도의 시간은 교수-학습 과정을 위한 시간이니, 아이들에게 주어진 점심시간, 쉬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나 됩니다.
이 시간,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뭐 당연히 이것저것 많이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모여서 수다도 떨고, 운동장으로 나가기도 하고, 한 쪽에서 춤을 추기도 하며, 그저 하릴없이 교실과 복도를 배회하기도 합니다.
가만보면, 우리는 아이들의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 이후의 여가 시간을 배려한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에 조금 인색한 마음 씀씀이를 가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4시간의 교수-학습 과정 시간보다, 그 1시간 30분이 더 곤혹스러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못해 그저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은 놀이의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놀이가 필요한 어린이들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은 많은 놀이를 생각하시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놀이 중에 보드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두드려보고자 이 공간의 문을 열었습니다.
2013년도 졸업생 중, 가장 많은 보드게임을 함께 플레이하였던 아이의 보드게임 기록.
졸업하고도 방과후에 종종 찾아와 같이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너무 멀리 이사가서 메시지만 훌쩍 날아오네요.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보드게임 놀이를 교실에서 즐겨오면서 겪어온 경험들, 추억들, 의미들을 두드려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보드게임을 아이들이 좋아하였는지에 대한 글과 교실에서 어떤 보드게임이 아이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글도 한 번 두드려 볼 생각입니다.
2014년도에 아이들과 함께 플레이하였던 보드게임들
무엇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보드게임이 가진 훌륭한 매력을 한 번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보실 수 있는 글을 두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실 수 있도록, 먼저 교사가 보드게이머, 보드게임 플레이어가 되어주실 때, 우리 아이들의 놀이는 교사와 함께 더 신나고 재미날 수 있을테니까요.
지난 겨울에 찾아와서, 같이 짜장면 시켜먹으면서 옛 기억을 되살렸던 그 녀석들과의 한 판 플레이
이 카테고리의 글은, 갓 대학을 졸업한 직장 초년생이 2003년에 처음으로 보드게임이라는 놀이를 만나 그 매력에 빠져 보드게임을 즐기고 모아 나가다가, 2008년에 교직에의 새로운 목표를 위해 달려나가기 시작하고 2012년에 마침내 교사가 되어 드디어 교실에서도 보드게임으로 함께 놀 수 있게된 교사가 두드리게 될 글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