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02
1학기 1단원 비유하는 표현 단원의 교과용 도서 구성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문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보다는 시의 표현 특성 중 비유법 - 그 중에서도 직유·은유만 - 에 초점을 맞추며 테크니컬하게 접근한다는 점입니다. 6학년 교과 전반의 흐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중등 과정 지식을 위한 사전 단원 정도의 내용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내용 구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는 굉장히 어려운 장르입니다. 아마도 시의 표현이 일상의 표현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어 안에 꾹꾹 눌러 담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눌러 담는 방법이 아닌, 일상의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와 연결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그 연결을 '상상'하도록 만들어 갑니다. 시야말로, 시인과 독자 모두가 자신을 극도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해나가는 문학 장르이며, 양자 간의 코드가 통하면 굉장히 강력한 공명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극히 서사적인 인간인 저의 경우, 이렇게 시의 세계를 이해할 뿐, 이런 것을 느껴본 바는 없습니다. 다만, 시가 주는 율격의 아름다움, 상상의 방식에 대한 놀라움, 그려질 듯 보여지는 심미의 세계, 그리고 울림을 주는 그 함축미 정도에 공감의 고갯짓을 끄덕일 정도의 수준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어린이들에게, 시가 주는 울림을 함께 공감하며 향유하는 경험을 통해 시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재글을 다시 골라 단원 전반을 재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등 교과용 도서의 구성을 전면적으로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교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왜 초등 교과용 도서는 중등 과정을 배우기 전 단계의 것으로 구성할까요? 예컨대, 수학의 경우, 교과 특유의 특성인 계열성 때문에 그 구성이 특히 두드러지지만, 어린이들이 급격한 발달 단계의 변화를 겪는다는 점에서 계열화하여 제시하는 교과 지식에 몰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면 그런 생각도 듭니다.
중학교 가면 직유, 은유 뿐만 아니라 비유의 다른 방식도 꼼꼼하게 배우는데, 굳이 초등학교에서 직유, 은유를 발견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시와 문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나누며 공감해 가는 것이, 더 유의미한 배움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교과용 도서에서 '비유법'에 너무 경도되어 있는 것을 벗어나, 그리고 비유법을 다루기 위한 제재글의 수준이 그리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제재글을 아래와 같이 바꾸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고 싶은 상>, 이슬
<Dear Moon>, 이지은
위 두 제재글은 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른 글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상>은 어머니를 여읜 초등학생이, 하루는 여상하게 받던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쓴 시입니다. 시가 일상의 느낌과 생각을 어떻게 시어로 바꾸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고른 제재글이자, 초등학생이 쓴 글로 시를 향유하는 교실의 어린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고르게 되었습니다.
<Dear Moon>은 시인의 생각과 느낌을 형상화 한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로 어떻게 전화하여 드러나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고른 제재글이자, 시어가 어떻게 노래가 되어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른 제재글입니다.
위 두 제재글을 통하여 어린이들은, 일상의 경험과 느낌을 형상화한 총체가 시인의 상상을 통하여 어떻게 다른 세계의 이미지와 연결되는지, 그 연결에 공감할 때 독자에게 어떻게 감동을 만드는지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제재글은 얼마든지 바꾸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6학년 1학기 첫 단원, 문학 단원에서, 어린이들이 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 제재글로,
<길>, 김종상
<지금은 공사중>, 박선미
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제재글은 단원 성취기준인 '비유'를 배우고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제재글로써, 둘 다 2009개정 교육과정 교과용 도서에 있던 제재글입니다. <길>의 경우, 일상의 경험 - 공동체가 이루는 네트워킹 - 이 어떻게 포도덩굴/포도송이/포도알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이를 독자의 경험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로써, 직유와 은유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앞선 배움과 연결되는 훌륭한 제재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은 공사중>의 경우, 어린이들이 관계 속에서 겪는 다양한 갈등과 상처, 다툼과 아픔의 흔적이 어떻게 마음 속에서 형상화되는지를 은유의 방식으로 잘 함축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제재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배운 후, 시의 표현 특성인 비유, 그리고 성취기준에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표현 특성인 운율과 심상을 염두에 두고, 일상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와 연결하는 활동을 수행해 보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하상욱 시인의 작품들을 활용하는데, 시인의 상상이 즉물적이라는 느낌은 있지만, 어린이들의 수준에 적절하게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토대로 시인의 작업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 년도와는 다르게, 올해는 시의 표현 방법을 염두에 둔 배움도 준비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구자행 선생님의 책 [국어 시간에 시 써 봤니?]를 읽으며, 저자가 제시한 시의 표현 방법이 어린이들에게도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의 표현 방법을 '그리는 시'와 '말하는 시'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는 시는 찰나의 모습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드러내는 시의 표현 방식이며, 말하는 시는 혼자에게 말하거나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층위의 학생 시를 사례로 들며 이 표현 방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일상의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에 함축하는 상상의 방식을 조금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과 함께 일상을 포착해 보기도 하고, 생각과 느낌을 정돈해 보기도 하는 경험으로 위 표현 방법을 활용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시집을 한 권 함께 읽을 생각입니다. 시집 한 권 읽히지 않는 교과 교육과정 운영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위한 배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바이기도 합니다. 새로 옮긴 학교에는 문현식 시인의 [팝콘교실]이 온책읽기 목적으로 여러 권 갖추어져 있어서 이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보드게이머 지인께서 어린이 시 모음집인 [마주이야기 시] 시리즈를 추천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이를 같이 읽어보긴 쉽지 않아 계속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시집을 함께 읽기하고, 어린이들이 다양하게 시에 가 닿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작년까지는 정유경 시인의 [까불고 싶은 날]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작년 근무하던 학교의 온책읽기 목적으로 여러 권 갖추어진 시집이었는데, 사실 [팝콘교실]이나 [까불고 싶은 날] 둘 다 어른의 시이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다음 시를 쓰도록 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 교과용 도서에서는 하나의 대상을 정한 후 공통점을 가진 다른 대상과 연결하여 이를 통해 비유를 만들고 있는데, 참 허접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시를 쓰는 방식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과 교육과정 재구성의 가장 큰 목적은, 상상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일련의 흐름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그저 교과용 도서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더 풍성한 배움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에서는 분명한 의미가 있는 재구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