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9.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결정에 대하여
작년 가을 쯤, 뜬금없이 문자가 와서는
- 선생님, 2천원만 빌려주세요.
- 읭? 갑자기 웬 2천원?
- 학원 가는 길에 갑자기 붕어빵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잠깐 교문에서 만나 갚으라는 말과 함께 2천원을 손에 쥐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걸 들고 온 겁니다. 그걸 받아야 하는데... :D 생각해보면, 뭐, 애들 올 때마다 밥 사 먹이고, 차 사 먹이고 하는데,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 준 걸로 쳐도 되니까, 안 받았죠.
그리고는 저녁 먹으러 돈까스 집에 갔습니다. 저녁 먹기 조금 이른 시간이라 얘는 우동먹고 저는 새우볶음밥 먹었습니다. 첫 이야기는
- 저 방학 때 학원 끊었었어요
였습니다.
- 왜 과거형이야?
- 새 학년 시작해서 다시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작년 12월 지나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학원을 끊고 싶더랍니다. 혼자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너무 흔쾌히 그러라고 해서, 방학 동안 학원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1주일은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했는데, 금새 풀어지더랍니다. 그렇게 2월을 지내고 새 학년을 맞이했는데, 결국 잘 안 된 것 같아서 다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가 바람을 넣은 것도 있습니다. 혼자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는데 왜 해 보질 않느냐, 는 말을 만날 때마다 했었으니까. 아마 그 말이 도화선이 되었겠지요.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부가 필요할 때, 그걸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경험이 선제되어야 한다. 물론,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좀 그렇습니다. 공부가 필요하지 않느냐, 는 말을 극도로 조심하는 부모 탓에, 저희 집 첫째와 둘째는 공부에 대한 필요를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는 듯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모가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는데, 부모는 필요성과 함께 해답도 함께 제공하는 편입니다. 학원이나 과외 등의 해법이 그런 경우인데요. 이 아이는 담임이었던 이에게, 그런 해법 아닌 선택지도 있다, 는 말을 만날 때마다 듣는 편이라 아마 이번 방학 때를 맞이하여 그런 판단을 해 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커피집으로 이어진 자리에서도, 그렇다보니 대화의 핵심은 자발성을 어떻게 꾸준하게 유지하는가, 였습니다. 기왕에 혼자 해 본 것, 한 번 잘 해보지 그랬는가, 같은 방식의 대화가 다른 예시와 사례로 계속 이어진 듯 합니다. 그런데, 차를 마신 후 차로 데려다 주는 와중에, 대화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 그래서, 다니던 학원으로 다시 간거야?
- 네. 학원에 갔더니 2학년 1학기 4단원인가 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저도 방학 때 그 정도까지는 했거든요. 그래서 거기까지 했다고 하니까 학원 선생님이 잘 되었다면서 진도가 맞으니까 그냥 수업 들으면 되겠다고 하셨어요.
- 야, 그럼 방학 동안에 혼자 한게 학원에 다녔으면 것이나 차이가 없는거야? 그럼 뭐하러 학원엘 가, 그냥 계속 혼자 하지.
혼자 하겠다는 결정의 성과가 아주 없는 줄 알았더니, 혼자 공부하는 그 방학 동안, 학원 진도만큼은 스스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웃기는 상황인 셈입니다.
학원에 다닌 경험은 자신의 역량과 성과에 대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기준이 보통은 질적 기준이 되기보단 양적 기준이 됩니다. 학원에서는 두 시간씩, 세 시간씩 하고 과제까지 하면 훨씬 많이 하는데, 집에서 혼자 하면 한 시간도 제대로 안하고 그나마도 띄엄띄엄 하였으니, 아이 생각에는 양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학원에서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수학이 그런 편인데, 지금도 대부분의 수학 학원은 유형 문제 풀어준 후 비슷한 문제 풀어보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봅니다. 쎈 수학 문제집이 많이 팔리는 이유가 학원 강의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 풀리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풀어주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풀리면서 하기에는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앉아서 듣고 있다보면, 공부한 시간은 굉장히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스스로 한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잘 남지 않습니다. '들을 때는 다 이해한 것 같은데, 실제로 풀어보면 안 풀려요' 같은 자기고백(!)들이 바로 이와 같은 수학 강의의 본질을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공부는, 자기주도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학원 강의보다 충분히 효율적입니다. 적은 시간을 들여서, 더 높은 성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믿지 못하는 마음이 드니까, 공부를 덜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다시 학원으로 들어가는거죠.
아이에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혼자 한 공부가 영판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네. 학원에 다녔어도 그 정도 진도를 나갔을텐데, 혼자 한 공부도 그 정도는 된 셈이니 혼자 계속 했어도 되었겠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 도전해보고 시도해보고 달려가는 아이들이, 왜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을까요. 아마도 주변에, 그런 도전과 시도와 질주를 격려하고 응원하기보다는 의구심을 갖고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저라도 그런 교사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